사랑

사랑

 

달빛으로 새끼 꼬아

당신 사랑 엮어 걸면

혼자 새울 그믐밤에

등불인 양 빛을 내어

어두운 마음 밭머리

밝혀주고 있으리.

 

 

2019. 8. 6

 

posted by 청라

둘이라서 다행이다

 

유등천변을 걷다가

두루미끼리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마리라서 다행이다.

만일 한 마리만 서 있었다면

들고 있는 한 다리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숲과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산들의 침묵

부리 끝에 걸치고 있는 노을이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가끔은 내 코고는 소리를

노랫소리 삼아 잠든다는 아내와

아내의 칼도마 소리만 들어도 한없이 편안해지는 나

둘이라서 다행이다.

아침저녁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 긴 인생 고개엔 겨울바람만 몰아쳤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아낄 일이 아니다.

무심코 넘어오는 큰소리는

상추에 싼 밥처럼 꿀꺽 삼킬 일이다.

저기 산 너머로 황혼이 가까워지는데

남은 길은 꽃밭만 보고 걸어가자.

생각만 해도 웃음 번지는

손잡고 걸어갈 사람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2019. 8. 2

충청예술문화90(20199월호)

PEN문학202178월호

 

posted by 청라

어느 여름날

어느 여름날

 

호박 덩굴 감아 올라간 흙담 밑이 고향이다.

말잠자리 깊이 든 잠 한 토막 끊어내어

무작정 시집보내던 어린 날의 풋 장난

 

담 따라 옥자 순자 송이송이 피어나면

일없이 호박벌처럼 온 종일 헤매던 골목

밥 먹자 부르던 엄마 감나무에 걸린 노을

 

건넛산 부엉이 울음 방죽엔 처녀 귀신

쪽 달빛 한 줌이면 콧김으로 날려버린

그 세월 먼 듯 가까이 안개처럼 아른댄다.

 

 

2019. 7. 31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