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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2시집-가슴에 묻은 이름에 해당되는 글 70건
글
계룡산의 10월
시월 계룡산은
타오르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골짜기마다 우웅 우웅
수많은 소리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눈빛 속으로 빨려 들면
온종일 맴돌며
나올 수가 없었다.
삼불봉에서
황혼을 타서 마시는
바람 한 모금
나도 가슴 뜨거운 가을 산이 되려는지
내뿜는 호흡마다
붉은 기운이 떠돌았다.
글
연화교에서
시냇물은 서 있는데
다리에 선 나는 흘러간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목탁소리 눈을 뜨면
안개 낀 다리를 건너
손짓하는 사바의 마을
글
고리
오늘 저 잠자리가 죽으면
내일은 또 무엇이 죽을까
각혈로 떨어진 봉숭아꽃 잎새 위로
잠자리 날개 하나
등 돌리고 있다.
파문 일던 하늘 한 자리 비어 있다.
동편 산자락에서 뽑혀버린 무지개처럼
허리 부러진 초록빛 고리,
내일 참새 그림자 사라지고
모레 독수리 그림자 사라지고
비어 가는 세상
사람들만 남는 세상…….
글
아파트의 눈
수만의 벌떼다.
날아올라 꽃을 찾다
시멘트벽에 부딪혀
더러는 눈물 되고
솔잎에 내려와 앉아
순백의 넋으로 핀다.
글
멧새
한 그루 남아있는
측백나무 위에
멧새가 날아와 울고 있다.
멧새 울음으로 화안해진
내 뜰, 영산홍 꽃가지 위로
산 속 이야기들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도시의 비명들이
담 밖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넘겨다 보다 달아난다.
살아있는 숨결로 들어선
초록빛 평화
멧새의 작은 그림자 뒤에서
거대하게 일어서는
산
글
여백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글
갑천 붕어
아파트 그림자를 산 그림자로 알고
꿈 찾아 올라온
갑천 붕어 한 마리
가도 가도 물은 맑아지지 않고
검은 폐수만 흘러내려
앞길은 깜깜하게 막혀 있었다.
비누 거품 속에서 바라보면
삶은 허허로운 거품 같은 것
붕어의 눈물 속에서
납물이 흘러내렸다.
등뼈 굽은 새끼를 안 낳으려고
붕어는 자갈밭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글
도시의 소나무
찢어진 살갗에서
중금속 피가 흘렀다.
머리를 빗으면
오존 비듬이 떨어졌다.
푸르던 그 머릿결에
노릇노릇 돋는 몸살.
푸른 산 바라보며
솔바람 불러 봐도
구름처럼 일어나는
회색 안개뿐이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멀어지는 산의 마음.
글
비명
영산홍꽃 피어나는
출근길
계룡로
문득 차 밑에
깔려드는 고양이
달아나는 차창으로
쫓아오는
야옹 야옹 야아-옹
글
강변 야영
강물은 그저
헐떡이고만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 속엔
강물의 핏빛 울음만 걸려 있었다.
어두워가는 울음의 늪에 와서
별들은
쏟아지기만 하고
맑게 웃는 낯빛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강변 풀밭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뜸봉샘 가에 아직 살아 있다는
내 어릴적
따오기 울음 한 파람 건질 수 없고
검게 썩은 물빛 문둥이처럼
강의 신음소리
밤새 내 꿈밭으로 흘러들어
개똥불 한 등 밝힐 수 없었네
강물처럼 밤새도록
뒤척이고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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