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수

 

제2부

어머님께 드리는 노래



진달래 개나리

생기 있게 피어나는 봄날,

세상 일 모두 놓으시고

훌훌히 떠나신 어머님께

이 작은 노래를 바칩니다.


정안수

부엉이 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이지러진 새벽달빛 창호지에 창백하고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어머님의 합장한 손.


한 대접 정안수에 밤 하늘 별을 담아

새벽녘 꿈을 헹궈 자식들 복 비는 마음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 


소쩍새 울음 따라 꽃신 신고 떠났어도

인생 길 어두운 밤 문득문득 밝혀주는

정안수 대접에 담긴 어머님의 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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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大田)

 

대전(大田)

계룡산 산자락 아래

늘 넉넉한 마음으로

순하디순한 사람들 모여 사는 곳


백제의 순결이 핏줄마다 남아 있어서

양남(兩南)에서 올라오는 억센 바람도

한밭에서 닦여지면

지순한 목소리가 된다.


금강 물도 여기 와서는

낮은 음성으로 흘러가지만

낮은 곳에서 빛처럼 일어서서

무너지지 않는 큰 힘이여!


가슴 넓은 사람끼리 어깨동무하고

우리 이웃들을 서로 아끼며

골목마다 웃음소리 넘쳐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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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

 

하회탈

이노옴

호령하면 입 꼬리에

미소 일어


봄 호수에 물결 지듯

이랑이랑

번지더니


하회탈

온 얼굴 가득

햇살웃음 익었다.


지워도

날이 서는 아픔을

다독이며


질펀한 농마당엔

신분도

수유인걸

한 세상

흥타령으로

슬픔 맑게 씻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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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나무

 

조선 소나무

등 굽혀

팔을 벌려

새 둥지 품에 안고


골물소리 모아다가

산 정기를 빚어내어


청청한

저 목소리로

산을 지키는 어머니.


절벽에

휘늘어져

인간을 굽어보며


하늘 음성 모아다가

발밑에 지란을 길러


산 마음

바람에 실어

물 아래 마을로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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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정(情)

가난해도

웃음소리가 늘 담을 넘어오는 집은

앞마당에 햇살이 더 오래 머물고


햇살이 달궈놓은 울타리 틈틈마다

호박처럼 사랑이

더 실하게

여물고……


posted by 청라

대추

 

대추

초록빛 그늘 뒤에 숨어

한여름 햇살 받아


단 맛으로 달구어져

부리부리 익은 사랑


정염은 두 볼에 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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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소나무들도

풍류를 알아

개성 있게 들 마주 섰다.


균열(龜裂)진 껍질마다

옛 목소리 어리었다.


여름날

오후의 정적을

매미소리 파도친다.


다 가고 없는 정자에

서린

뜬구름 그림자여


부석사 종소리가

물소리에 녹아 있어


세월만

흘러간 뜰에

붉은 꽃은 또 피어났네.


posted by 청라

공산성(公山城)에서

 

공산성(公山城)에서

백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고추잠자리 맴돌아 익어 가는

단풍나무 숲

아랫마을로


신라관광 몇 대

조을 듯 들어서고


하늘이 더 깊숙이

세상 담아주는

무령왕릉 가는 길 위에


역사의 수레바퀴로 날리는

신문지 한 장……


무너진 성 자락 이끼마다 서린

시간의 향기


초가을 맑은 햇살에

헹궈낸 강물 소리로

목을 축이면


나는

옥양목빛 피가 흐르는

아사달이 된다

posted by 청라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석등(石燈) 안

찰람찰람 고인 고요를

새벽달이 갸웃이 훔쳐보고 있다.


파도 소리에 씻겨진

동백꽃 봉오리마다

세상 밝히는 꽃불을 켜면


먼 수평선 일어서는 눈부신 평화(平和)

관음상 입가에 살포시

미소로 번져….

posted by 청라

낙화

 

낙화

꽃등인양 불 밝히고

꽃샘바람 속에 서성대더니


해 기울자 날개 접고

내려지는 백목련꽃


바르르 떠는 꽃가지

봄이 지는 아쉬움


달빛은 꽃그늘에

화향을 깔아두고


술잔마다 내려앉아

설렘으로 뒤척이네


반가운 친구와 앉아

지는 봄을 마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