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은 이름

 

가슴에 묻은 이름

올해도 사월 초파일

남가섭암에 올라 영가 등 하나 밝혔습니다.

멀리 산자락 휘돌아 녹음 덮고 누운

당신의 집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깊이 묻었던 당신의 이름을 꺼내보았습니다.


저기 꼬불꼬불한 산길에는

옥양목 치마저고리 백목련 같던

당신의 그림자 보일 듯합니다.

자식들 복을 비시기 위해

겨울 칼바람 눈 덮인 길도

막을 수 없었던 당신의 발걸음.


한국 전쟁 틈에 일곱 살 귀여운 자식

돌무덤으로 보내고,

내가 우등상을 타 올 때마다

얼굴은 환하게 웃으셨지만

마음은 늘 젖어있던 어머니.


부엉이 울음소리에 놀라 깬 새벽

달빛 새어드는 문틈으로 보던

정안수 한 그릇,

다곳이 모아진 두 손가에

폭죽처럼 쏟아지던 하늘

그 하늘의 별빛.


자식들 위해 온 생애 바치시고

맨몸으로 떠나신 어머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허공에 띄워주는 작은 영가 등 하나

바람 불고 추운 저승길 한모퉁이 밝혀달라는

이승에서 보내는 내 작은 기도.


한낮의 햇살 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려고

날개 파닥이는 등불을 보며

어머니의 생애를 접어

가슴에 묻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묻습니다.


posted by 청라
 

흑백사진

― 思母十題 10

어머님의 흑백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 색색의 내 꿈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습니다.


새색시 적 해맑은 미소 위로는

대추꽃이 함초롬히 떨어지고 있었고

이제는 허물어진 옛집 앞마당에

잃어버린 추억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흑백사진 작은 뒤꼍에

열여덟에 산그늘로 숨은

누님의 눈물도 거느리고 있었고


떡 사발 주고받던 토담 너머로

어머님의 초여름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눈동자에 맑게 고인 하늘로

하얀 구름 되어 떠나셨지만



posted by 청라

어머니 ― 思母十題 9

 

어머니

― 思母十題 9 
   
  
   어머님의 이름은
   연분홍
그리움의 빛깔

어머니,
   나직이 불러보면

입안 가득 향기가 고입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어스름 새벽 달빛 아래

나를 위해 빌어주던

하얀 손이 떠오릅니다.


등창으로 내가 고생하던 겨울 찬 새벽

밥상에도 못 놓던 쌀 몇 되 머리에 이고

남가섭암 달려 올라가던

눈길이 떠오릅니다.


읍내 중학교에 보내달라고

떼쓰는 아들 종아리 때려놓고

밤새도록 상처 자국 어루만지며

소리 죽여 흐느끼던 진한 눈물이 떠오릅니다.

진달래꽃 피던 봄날

어머님

소쩍새 울음으로 가신 후

저녁놀 질 무렵이면 고향으로 흐르던

그리움의 강은 끊겼습니다.


살아생전 마음 한 번

편하게 못해 드린

내 마음의 빛깔은

잿빛 후회입니다.

posted by 청라

어머니 마음

 

어머니 마음

입을 아이 없는 옷을

방망이로 두드리며


다듬이 한 소절에

마음속 별을 끄는


손끝에 바람 이는

어머니 마음 아는가 

posted by 청라
 

정안수

― 思母 十題 8

어머님 무덤가에 맺힌

이슬 한 방울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정안수 한 대접


살아가는 내 길가에 가시덤불

날 선 그믐달로 떠올라 베어주던

어머님 창백한 손


저승에서도 눈물로 비는 마음

풀끝에 띄워 올린

이슬 한 방울.

posted by 청라

사진

 

사진

옥수수 밭머리

밀려오는

초록 바람


매미소리 피워내는

상수리나무 수풀


어머님 환한 미소에 한여름이 물결치다.



다 해진 광목치마

바람 새는

베저고리


헝클어진 머리칼에

윤기는 식었어도


포근한 그 눈빛 속에 고향 마음 어리다.

posted by 청라

요술 치마

 

요술 치마

봄 냄새 은은한

어머님 앞치마엔


취나물

도라지

고사리

나물 사이


찔레도 삘기도 숨어

무진무진 솟아났지.


모깃불 향내 속에

멍석 펴고 드러누워


어머님

치마 덮고

밤하늘

별을 보면


따스한 옛날 얘기에

잠이 살풋 들었지.

사진

posted by 청라

눈물 ― 思母 十題 7

 

눈물

― 思母 十題 7

부엉이 소리에 놀라

잠이 깨면

이불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아버님은 투전판에서 며칠째 아니 오시고

‘기챙이네 못살게 되었다더라’

풍문이 먼저 건너온 날 저녁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어머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잠든 자식들 손 하나하나 잡아보시며

어둠을 환히 태우고도 남을

시퍼렇게 날 선 눈물을 보았습니다.


꿈밭 머리 빛 이랑이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이 오면


밤새 진한 울음이 걸려있던

입꼬리에 분꽃으로 피어나는

어머님 미소 속에서


말갛게 가라앉은

눈물을 보았습니다.

posted by 청라

기다림― 思母 十題 6

 

기다림

― 思母 十題 6

살구꽃이 피면서

그늘 속에 숨어있던 마지막 겨울이

은은한 봄향기에 녹아듭니다.

마곡사에서 띄워 보낸 풍경소리가

태화천 물소리 속에 더 맑게 들리고

가리마처럼 정결하던 남가섭암 가는 길에도

연초록 봄 물결이 넘실댑니다.

속삭이는 봄바람이 살구꽃 가지 스칠 때마다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어머님 자취를 찾아봅니다.

살구꽃 꽃등은 기세 좋게 타오르는데

굳게 닫힌 대문은 적막합니다.

오늘 아침 쓸어놓은 마당의 빗자국마다

햇살은 투명하게 내려와 속살거리고

어젯밤 꿈밭에서 생시처럼 앉아 계시던

우물 가 돌 위에는 구름 그림자만 어른댑니다.

아침 내내 살구꽃 망울 틔워주던

까치 울음소리도 보이지 않고

화향이 폭죽처럼 번져가는 들판으로

하루는 빨리 가서

철성산 저녁 어스름이 내려옵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 어릴 적 그 바위에 앉아 기다리면

장에서 돌아오듯 산모롱이로

아른아른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한데

어머님 기다리는 살구꽃 핀 날 하루는

知天命의 나이에도 어린애 되는

어머님!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만 대답하는

산천에 봄이 왔지만

내 가슴은 겨울입니다.

posted by 청라

어머님 제삿날

 

어머님 제삿날

마당 쓸고 마루 닦고

새 옷 입고 문간에 서


산모롱이 바라보며

어머님 기다리니


까치들도 소리를 모아

하루해를  지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