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고리

오늘 저 잠자리가 죽으면

내일은 또 무엇이 죽을까

각혈로 떨어진 봉숭아꽃 잎새 위로

잠자리 날개 하나

등 돌리고 있다.

파문 일던 하늘 한 자리 비어 있다.

동편 산자락에서 뽑혀버린 무지개처럼

허리 부러진 초록빛 고리,

내일 참새 그림자 사라지고

모레 독수리 그림자 사라지고

비어 가는 세상

사람들만 남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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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눈

 

아파트의 눈

수만의 벌떼다.

날아올라 꽃을 찾다


시멘트벽에 부딪혀

더러는 눈물 되고


솔잎에 내려와 앉아

순백의 넋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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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새

 

멧새

한 그루 남아있는

측백나무 위에

멧새가 날아와 울고 있다.


멧새 울음으로 화안해진

내 뜰, 영산홍 꽃가지 위로

산 속 이야기들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도시의 비명들이

담 밖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넘겨다 보다 달아난다.


살아있는 숨결로 들어선

초록빛 평화


멧새의 작은 그림자 뒤에서

거대하게 일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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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여백

벽을 비워 놓았더니

산이 들어와 앉아 있다.


꽃향기

골물 소리

집안 가득 피어난다.


채우고 채워진 세상

하나 비워 얻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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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천천 붕어

 

갑천 붕어

아파트 그림자를 산 그림자로 알고

꿈 찾아 올라온

갑천 붕어 한 마리


가도 가도 물은 맑아지지 않고

검은 폐수만 흘러내려

앞길은 깜깜하게 막혀 있었다.


비누 거품 속에서 바라보면

삶은 허허로운 거품 같은 것


붕어의 눈물 속에서

납물이 흘러내렸다.


등뼈 굽은 새끼를 안 낳으려고

붕어는 자갈밭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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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나무

 

도시의 소나무

찢어진 살갗에서

중금속 피가 흘렀다.

머리를 빗으면

오존 비듬이 떨어졌다.

푸르던 그 머릿결에

노릇노릇 돋는 몸살.


푸른 산 바라보며

솔바람 불러 봐도

구름처럼 일어나는

회색 안개뿐이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멀어지는 산의 마음.

posted by 청라

비명

 

비명

영산홍꽃 피어나는

출근길

계룡로


문득 차 밑에

깔려드는 고양이


달아나는 차창으로

쫓아오는

야옹 야옹 야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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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야영

 

강변 야영

강물은 그저

헐떡이고만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 속엔

강물의 핏빛 울음만 걸려 있었다.


어두워가는 울음의 늪에 와서

별들은

쏟아지기만 하고

맑게 웃는 낯빛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강변 풀밭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뜸봉샘 가에 아직 살아 있다는

내 어릴적

따오기 울음 한 파람 건질 수 없고


검게 썩은 물빛 문둥이처럼

강의 신음소리

밤새 내 꿈밭으로 흘러들어


개똥불 한 등 밝힐 수 없었네

강물처럼 밤새도록

뒤척이고만 있었네.

posted by 청라

청양 개구리

 

제3부

자연의 비명 소리



오늘 개구리 그림자 사라지고

내일 참새 그림자 사라지고

글피에는 물고기 그림자 사라지고

비어 가는 세상

사람들만 남는 세상….


청양 개구리

열려진 차창 틈으로

섬광처럼

개구리 울음 하나 지나갔다.


별똥별처럼

타버리고 다시는 반짝이지 않았다.


칠갑산 큰 어둠은

돌 틈마다 풀꽃으로

개구리 울음 품고 있지만


기침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

가슴을 닫았다.


차창을 더 크게 열어봤지만

청양을 다 지나도록 청양 개구리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posted by 청라

성묘

 

성묘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무덤가에


눈시울 적시며

절하고 돌아서면


내딛는 발자국마다

밝혀주는 초승달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