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 思母 十題 1

 

임종

                               ― 思母 十題 1


까마귀 울음소리가 물고 가는

어머님 이름

간절한 눈물로 피워낸

진달래꽃 수만 송이로도

어머님 발걸음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 놓고 떠나시는 어머님 빈 손

육 남매를 묶어 놓던

분홍빛 질긴 끈 위에

우리는 하나씩 손을 얹어 드렸습니다.

철성산 산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어스름 따라

남가섭암 목탁 소리가 내려옵니다.

우리를 위해 부처님께 비시던 입술은 굳어

아무 말씀도 하실 수 없고

이제 어머님을 위해 내가 두 손을 모아봅니다.

시냇물들은 어제처럼

제 몸들을 부딪쳐 거품을 피워내고

어머님을 위해 서둘러 달려온 봄은

버들강아지 가지마다

몸부림치며 불꽃 피우는데

어머님 이름이 지워지자

고향 빛깔은

막막한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posted by 청라

정안수

 

제2부

어머님께 드리는 노래



진달래 개나리

생기 있게 피어나는 봄날,

세상 일 모두 놓으시고

훌훌히 떠나신 어머님께

이 작은 노래를 바칩니다.


정안수

부엉이 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이지러진 새벽달빛 창호지에 창백하고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어머님의 합장한 손.


한 대접 정안수에 밤 하늘 별을 담아

새벽녘 꿈을 헹궈 자식들 복 비는 마음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 


소쩍새 울음 따라 꽃신 신고 떠났어도

인생 길 어두운 밤 문득문득 밝혀주는

정안수 대접에 담긴 어머님의 큰사랑

posted by 청라

대전(大田)

 

대전(大田)

계룡산 산자락 아래

늘 넉넉한 마음으로

순하디순한 사람들 모여 사는 곳


백제의 순결이 핏줄마다 남아 있어서

양남(兩南)에서 올라오는 억센 바람도

한밭에서 닦여지면

지순한 목소리가 된다.


금강 물도 여기 와서는

낮은 음성으로 흘러가지만

낮은 곳에서 빛처럼 일어서서

무너지지 않는 큰 힘이여!


가슴 넓은 사람끼리 어깨동무하고

우리 이웃들을 서로 아끼며

골목마다 웃음소리 넘쳐나게 하자. 

posted by 청라

하회탈

 

하회탈

이노옴

호령하면 입 꼬리에

미소 일어


봄 호수에 물결 지듯

이랑이랑

번지더니


하회탈

온 얼굴 가득

햇살웃음 익었다.


지워도

날이 서는 아픔을

다독이며


질펀한 농마당엔

신분도

수유인걸

한 세상

흥타령으로

슬픔 맑게 씻은 얼굴.

posted by 청라

조선 소나무

 

조선 소나무

등 굽혀

팔을 벌려

새 둥지 품에 안고


골물소리 모아다가

산 정기를 빚어내어


청청한

저 목소리로

산을 지키는 어머니.


절벽에

휘늘어져

인간을 굽어보며


하늘 음성 모아다가

발밑에 지란을 길러


산 마음

바람에 실어

물 아래 마을로 띄운다

posted by 청라

정(情)

 

정(情)

가난해도

웃음소리가 늘 담을 넘어오는 집은

앞마당에 햇살이 더 오래 머물고


햇살이 달궈놓은 울타리 틈틈마다

호박처럼 사랑이

더 실하게

여물고……


posted by 청라

대추

 

대추

초록빛 그늘 뒤에 숨어

한여름 햇살 받아


단 맛으로 달구어져

부리부리 익은 사랑


정염은 두 볼에 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posted by 청라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소나무들도

풍류를 알아

개성 있게 들 마주 섰다.


균열(龜裂)진 껍질마다

옛 목소리 어리었다.


여름날

오후의 정적을

매미소리 파도친다.


다 가고 없는 정자에

서린

뜬구름 그림자여


부석사 종소리가

물소리에 녹아 있어


세월만

흘러간 뜰에

붉은 꽃은 또 피어났네.


posted by 청라

공산성(公山城)에서

 

공산성(公山城)에서

백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고추잠자리 맴돌아 익어 가는

단풍나무 숲

아랫마을로


신라관광 몇 대

조을 듯 들어서고


하늘이 더 깊숙이

세상 담아주는

무령왕릉 가는 길 위에


역사의 수레바퀴로 날리는

신문지 한 장……


무너진 성 자락 이끼마다 서린

시간의 향기


초가을 맑은 햇살에

헹궈낸 강물 소리로

목을 축이면


나는

옥양목빛 피가 흐르는

아사달이 된다

posted by 청라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일출(日出)

향일암 석등(石燈) 안

찰람찰람 고인 고요를

새벽달이 갸웃이 훔쳐보고 있다.


파도 소리에 씻겨진

동백꽃 봉오리마다

세상 밝히는 꽃불을 켜면


먼 수평선 일어서는 눈부신 평화(平和)

관음상 입가에 살포시

미소로 번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