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치에 핀 꽃


사진  김주형



둥치에 핀 꽃

 

 

젊음은 벽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불의不義한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내 피를 연소燃燒시켜

거친 땅에 정의正義를 세운다.

 

사월의 눈보라 앞에서도

굳센 정신의 심지에 불을 붙여

 

사랑을 완성한

저 꽃을 보라.

 

청춘은 쉽게 꺾이지 않아서

외로워도 아름답다.

 

2016. 11. 18

문학저널163(20176월호)

 

 

posted by 청라

가을 산행

가을 산행

 

 

오욕을 털어내니

가지들 정결하다

은밀한 골물 소리

속진俗塵을 닦고 있나

지나온 길 돌아보니

허물만 깔려있네.

 

버리고 다 버려도

사랑만은 못 버려서

하나 남은 단풍잎이

유독 붉게 익어있다.

불타는 외침만 한 등

빈 산 환히 비춘다.

 

2016. 11. 16

 

posted by 청라

조룡대, 머리를 감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깃발이 있다.

깃발 들고 모인 사람들은 

제 그림자는 볼 줄 모른다.


조룡대에 와서

주먹질 하는 나그네들아

조룡대는 날마다 죽지를 자르고 싶다.


부소산에 단풍 한 잎 물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자란

소정방의 무릎 자국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 


지느러미라도 있었다면

천 년 전 그 날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을


깃발 들고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아,


비듬처럼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식히려고

백마강 물살을 빌려 조룡대는

오늘도 머리를 감는다.

 

2016, 11. 8

심상 20176월호

posted by 청라

비둘기

비둘기

 

 

허기진

비둘기가

눈발을 쪼고 있다.

 

아무리 삼켜 봐도

요기가 안 되는 눈

 

십이월 바람의 칼날

서성이는 눈동자

 

 

2016. 11. 7

posted by 청라

주례사

주례사 2016. 10. 30. 20:50

주례사

 

 

  가을이 곱게 익어가는 토요일입니다. 엊그제 플라워랜드에 갔더니 국화꽃들이 농익을 대로 익어서 늦은 가을을 환하게 불 밝히는 것을 보고 , 원숙하다는 것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서로 다른 영혼으로 살다가 오늘 비로소 한 몸이 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연리지와 같아서 저는 두 사람의 인생이 결혼을 통해 화창해지라고 비는 마음을 연리지를 통해 말해보려 합니다.

  연리지는 서로 뿌리가 다른 두 가지가 서로 엉겨 붙어 한 나무로 살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로, <후한서> ‘채옹편에서는 처음으로 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이제 부모님은 네 분이 되겠지요. 자고로 상대편의 부모님께 잘못하고 사랑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배우자를 통해 새로 인연을 맺는 부모님을, 가족을 진정 내 부모님,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모실 때 더 튼튼하고 싱싱한 연리지가 탄생된다는 것을 신랑 신부는 가슴 깊이 인식하고 실천해주길 바랍니다.

  연리지의 상징적 의미는 점차로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 부부애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다른 나무끼리 한 나무로 살아가며 다시 찢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 필요할까요. 저는 바로 변치 않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같이 뜨겁던 사랑도 잘못 가꾸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맙니다. 이 사랑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늘 배우자를 믿고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려고 자신을 희생할 때 천 년 만 년 푸름을 잃지 않는 연리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 또한 깊이 되새길 것을 주례는 신랑 신부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얼마 전 제 세 번째 시집인 <춤바위>부부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이 시에는 연리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이 가득 담겨 있기에 주례는 하객 여러분이 증인으로 참석한 이 자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부부

                                엄기창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

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

더듬이처럼 사랑의 촉수를 뻗어

아내의 작은 한숨마저 감지해 내고는

아내의 겨울을 지운다.

어깨동무하고 걸어오면서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추고

내가 넘어지면

아내가 일으켜주고

천둥 한 번 일지 않은 우리들의 서른여덟 해

사랑하고 살기만도 부족한 삶에

미워할 새가 어디 있으랴.

 

  늘 마음의 반을 접어 서로의 마음 갈피에 끼우고, 상대방의 작은 번민까지 감지해 지워주려는 마음, 고달픈 인생행로에서 한 사람이발을 틀리면 서로 맞춰가려는 마음, 사랑하며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에서 미워할 새가 있겠냐는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일생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아름다운 새 시작에 축복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161030

                                                     주례 엄 기 창

posted by 청라

가림성加林城의 가을

 

 

백가苩加는 무슨 소망을 돌에 담아 쌓았을까.

가림성加林城의 가을은 억새 울음에 젖어있다.

상좌평上佐平에 있으면서 또 무었을 꿈꾸었기에

피로 일어났다가 피로 쓰러졌는가.

멀리 보이는 금강 하구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부지런한 세월만 바다로 흐르고 있다.

역사 앞에 서면 인생 부귀는 한낱 구름인데

날리는 신문 조각마다 백가苩加살아있네.

posted by 청라

낙화암

낙화암

 

 

백마강으로 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썩다 만 모과처럼 

낙화암은 늘 가슴이 아프다.

아침나절 신음하던 바람들이

절벽을 흔들다가 고란사 종소리를 따라간 후

비가 내렸다.

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유람선에서만 

조룡대 전설이 피었다 질 뿐

신라도 당나라도 없는 세상에

삼천궁녀의 한숨이 가슴에 닿아 

꽃으로 피는 사람 있을까.

하구 둑에 막힌 절규들만 하루 종일

물새 울음으로 출렁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에도 촉촉해지는 

천 년의 이끼가 되고 싶었다.

 

 

2016. 10. 21

대전문학74(2016년 겨울호)

시문학20178월호

시학과 시창간호(2019년 봄호)

 

 

posted by 청라

외연도 가는 길

외연도 가는 길

 

 

파도의 칼끝마다 햇살을 머금었다.

등 푸른 바다가 온통 불 밭이다.

내 삶의 덮개를 열고 우울증을 태운다.

 

달려온 뒷모습을 서둘러 지우는 배

접히는 바닷길 끝 홰를 치는 외연도여

포구에 갈매기 울음 먼저 나와 맞는다.

 

2016. 10. 19

 

posted by 청라

노란 스카프

노란 스카프

 

 

내 나이 가을에는

미운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뜰 앞 은행나무에

화해의 노란 스카프

가득 걸어놓고

 

내게서 마음 떠난 사람들

다시 돌아오라고

간절히 손 흔들고 있다.

 

커피 향 한 모금에도

눈물이 나고

 

진홍빛 사과 위에 머무는 햇살이

따스하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간

 

내 나이 가을에는

미운 사람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노란 스카프 흔들고 있다.

 

 

2014. 10. 9

 

posted by 청라

대전시 문화상 수상

엄기창 관련 기사 2016. 9. 30. 08:15
  •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조임환·엄기창·이길식 씨 ‘대전시 문화상’

10월 12일 대전시청서 시상식

임연희 기자2016.09.29 13:25:16

▲대전시는 28일 문화상심사위원회를 열고 ▲예술부문 조임환 사진작가(왼쪽) ▲문학부문 엄기창 시인(가운데) ▲ 지역사회봉사부문으로는 이길식 한밭사랑봉사회 회원(오른쪽)을 각각 올해의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제28회 대전광역시 문화상 수상자로 조임환 사진작가와 엄기창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 부회장, 이길식 한밭사랑봉사회 회원 등 3명이 선정됐다.

대전시는 28일 문화상심사위원회를 열고 ▲예술부문 조임환 사진작가 ▲문학부문 엄기창 시인 ▲ 지역사회봉사부문으로는 이길식 한밭사랑봉사회 회원을 각각 올해의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예술부문 수상자 조임환 사진작가는 한국사진작가협회 대전광역시지회 자문위원으로 한평생을 장인정신으로 흑백사진을 고집하며 디지털사진 시대 속에서도 흑백사진에 대한 전통성을 전파하고 있다.

조 작가는 사진계의 원로로 흑백사진의 작품성이 뛰어나며,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지역 문화예술계에 귀감을 보여주고 있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문학부문 수상자 엄기창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 부회장은 교직에 있으면서 문학도들을 지도하고 학생문학 단체를 육성하는 등 후진양성에 기여한 바가 크고, 최근에도 시조집을 내는 등 줄기찬 창작노력․실험정신으로 한국 문학 저변 확대에 공헌한 면이 높이 평가되었다.

지역사회봉사부문 이길식 한밭사랑봉사회 회원은 봉사활동단체 회장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순수하게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어려운 주민을 위한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환경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서 봉사활동을 전개한 점이 인정되었다.

대전시는 이번에 선정된 3명의 문화상 수상자에 대해 오는 10월 12일  오전 11시 시청 대강당에서 문화원의 날 기념행사 때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