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歌·5


 

短歌·5




하나의 離別은

별처럼 반짝이지만

두 개의 離別, 세 개의 離別,

수많은 이별들은 반짝이지 못한다.

너의 목에 걸린 백 여덟의 離別

나와의 마지막 이별도

긴 세월 돌아누운 은하수처럼

부연 빛 덩어리 속으로 잦아든다.

나의 가슴 속

오직 한 개의 離別

활활 불타는 한 개의 離別

지금도 반짝이고 있다.

너의 잿빛 가슴 속을 침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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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歌·4

 

短歌·4




수편선상에 무지개가

영롱히 머리를 든다.

맨드라미만한 섬 하나 못 핀

동해바다

무한의 배꼽 위에

지난 달 영은암 여승방

깨진 거울 속으로 사라진

번뇌의 일곱 가지 갈등

하얀 소름의 소금기

번득이며

파도는 뜨거운 악수를 하고 지나간다.

눈을 감고 바라보면

더욱 선명한

억겁의 파도 소리로 씻어낼 수 없는

당신의 모습




posted by 청라

短歌·3


 

短歌·3




눈 위에 떨어진

피 한 방울처럼

너와 나는 남남이다.

새벽부터 목탁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다.

우주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후광에 쌓여 온 너의

하얀 손

그 하얀 손의 고개짓

四十九日 밤낮을 눈 안 붙이고

나를 위해 목탁만 두드리더니

너는 하얗게 승천하고

아직 붉은

나와, 너는 남남이다.


posted by 청라

短歌·2

 

 

短歌·2



나의 검은 구두발이 털을 세우고

조용한 너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

돌부리를 걷어 차면서 주먹을

내두르면서

긴 뿌리 끝 담담한

너의 바다에 도전한다

수천의 자갈 소리로

온몸 기름을 다 태워 불을 밝히고,

빈 뼈만 하얗게 죽어 있어도

너의 독경 소리는 아직

나의 가슴에

한 송이의 연꽃도 피우지 못한다.






posted by 청라

短歌·1

 

短歌·1




아침 연못 속을 들여다 보며

곤두벌레처럼

꼰두서는 사랑을 재우며

하나의 요령

열두 사람 상여꾼 상여 소리로

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다.

한강에 풍덩풍덩

돌 던지긴가

끊임없는 나의 신호는

한 소절씩 연못 속으로 빠져 들고...

아침의 모든 눈들은

연못 쪽으로 기울어 있다.




posted by 청라

막차 안에서

 

막차 안에서




막차는 차갑게 식어

어둠에 풀린다.

흙으로 돌아가듯

남은 사람 훌훌 털어버리고

잠잠히 가라앉은 마지막 자유

떠난 사람들이 비운 자리를

혼자 채우고 앉아 있다.

모두 잠든 세상을 홀로 깨어서

마음으로나 들을 수 있는

눈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환히 뻗어 온 뒷길을 밝혀

어둠 속 낯선 길 한 번 걸어가 볼까

창문에 초침이 멎은

손목이 크게 비치고

긴 밤과 끝없이 싸우는 사내

하얀 얼굴이 보인다.


posted by 청라

대숲 속에서


대숲 속에서

 

淸羅 嚴基昌

세상에서 깨어진 바람으로

대숲으로 와

초록빛 대바람에 살을 섞는다.

藥水처럼 몇 모금

새어 내리는 하늘을 마시고

대나무의 곧은 음성으로 일어선다.

산 뻐국새 울음소리에

아픈 마음 아픈 살 도려내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대바람소리 앞세우고 가

거리의 모든 어둠을 쓸어 내리라.

밖으로 나가는 통로마다

둥글게 빛이 集中해 오고

빛을 통해서 바라보는 먼 마을엔

남기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

대나무 뿌리에서 몸을 세운 나의 천둥은

한 올씩 한 올씩 빗질되어 가라앉고

나는

다시 초록빛 갈기 휘날리는 바람

맨발로 맨발로 대밭을 나선다.



posted by 청라

도회의 나무


도회의 나무

淸羅 嚴基昌
옥상 위에는
헐벗은 마음을 달래려는
화단이 하나 있고
고향을 잃은 나무들이
창백한 낯으로 졸고 있다.
용암이 끓는 지열 대신에
늘 싸늘한 콘크리트
절망을 딛고 서서
땡감빛 햇살만 넝마처럼 걸치고
발 하나 마음대로 뻗지 못하는
토박한 발아래 저 밑 세상엔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질경이처럼 모여 살고 있다.
기다림이 있는데, 화단엔
까치 울음 한 파람 반짝이지 않고
어쩌다 길 잘못든
멧새 한 마리
빌딩 너머 먼 산만 바라보며 나직이 운다.
posted by 청라

行樂地 저녁 풍경


行樂地 저녁 풍경

淸羅 嚴基昌
어린애 울음에
꽃이 지고 있었다
꽃이 진 빈 자리를
어둠이 채우고 있었다.
술취한 사람들은 어둠에 쫓겨
무심히 지나가는 빈 바람이었다.
바람의 뒤꿈치를
아이의 울음이 악쓰며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의 붉은 울음에 산이 떨었다.
금간 어둠 사이로
초승달이 삐굼이 떠올라
목쉰 아이 눈물 혼자 보고 있었다.
posted by 청라

인형의 목


인형의 목

淸羅 嚴基昌
혼자 걷는 길에만, 너는
너의 내면에서 나의
내면으로 건너 온다
바둑돌 모양 살은 깎이고
흑백의 뼈만 남은
그 말 한 마디만 가지고 건너온다.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은 슬픔이란다.>
세월이 갈수록 윤기 도는
너의 허연 목뼈.
살아 움직이나보다 너의
목뼈는
내가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면
떨어져 나간 머리 대신으로
조용히 목을 흔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