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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24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 보기
- 2015.01.13 성城
- 2015.01.09 고무줄 1
- 2015.01.08 선구자
- 2015.01.06 주홍 발찌
- 2015.01.03 사는 것 우울할 때-시장풍경2
- 2015.01.03 중앙시장에서-시장 풍경1
- 2014.12.24 가정
- 2014.12.19 대청호 가을
- 2014.12.16 후회
글
<청라의 사색 채널>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 보기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내가 K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그 곳에서 만난 교장선생님은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신 분이셨다. 학생들을 처벌로 교육하기보다 훌륭한 학생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큰 상을 줌으로써 모든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학생 상을 제시해주고, 모든 학생들이 그 학생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계셨다. 시골의 작은 학교라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아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선생님들의 불평에도 굳건히 버티시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셨다.
벚꽃이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학생과 교내 계를 맡고 있던 나는 아침 교문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복장불량 학생들만 따로 모아 한쪽에 엎드려뻗쳐를 시켜놓았다. 기분 좋게 출근하시던 교장선생님께서 그걸 보시더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
“엄 선생, 즉시 교장실로 와요.”
벌을 받던 아이들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평소에 온화한 성품이셨기에 별 일이야 있으려고 하고 큰 걱정 없이 교장실에 갔다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고 입이 퉁퉁 부어 나왔다. 교장선생님의 그런 따뜻한 배려심도 모르고 학생들은 계속 말썽을 일으켰고, 나도 한동안 교문에 절대 안 서는 것으로 반항도 했지만, 교직에 오래 서 있으면서 그 때 그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내 가슴에 나도 모르게 이식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꼭꼭 짚어주는 것도 교사가 할 일이지만, 때로는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학교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남의 잘못을 먼저 발견하여 지적해주면 인간관계를 해치기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 중에는 사물을 보는 기본이 부정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긍정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최복현 선생은 ‘마음을 열어주는 편지’ 중에서 남의 좋은 점만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 사람을 닮아가서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된다고 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판단의 기본이 부정에서 출발하여 비판만 하는 사람은 주위를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새 돌아보면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흉악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신문의 칸칸을 찾아보아도 읽어서 흐뭇한 이야기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드문 세상이다. 아들이 부모를 죽였다느니, 동거하던 여자를 죽여 토막 내어 묻었다느니 입에 담지 못할 패륜적인 이야기들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기자들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굴하여 세상을 밝힐 생각은 않고 특종만 얻으려고 가장 자극적이 이야기들만 찾아 나선다. 저런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워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겠는가.
우리 모두 아름다운 것을 먼저 보는 눈을 가꾸자.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만 살게 하자.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금강일보> 2015년 1월 2일
글
성城
돌 틈마다 세월의 무게가 돌이끼로 덮여있다.
깨어진 기왓장에 박혀있는 삶의 무늬
시간이 스쳐 온 자리 스며있는 눈물과 한숨
무너져도 일어서는 분노를 다독이며
단심丹心 의혈義血이 꽃처럼 지던 그 날
함성이 떠난 자리에 흰 구름만 떠도네.
무엇을 깎아내려 밤새도록 쏟아 부었나
비바람 지나간 성터 수목 빛이 더욱 곱다.
역사는 지우려할수록 더 파랗게 살아난다.
2015, 1, 13
글
고무줄
계집애들 고무줄 하는데 심술쟁이 희수란 놈 시침 떼고 다가가서 고무줄 뚝 끊어놓으면
모두들 어이없어 동작 뚝, 흐르는 적막, "저 씹할 놈이" 상순이년 욕소리에 희수를 향해 몰려들 가는데, 봉자 년은 막대기 들고, 경자 년은 돌멩이 들고, 복자 년은 신발 벗어 들고, 운동장은 개판……
온종일 도망치려면 자르기는 왜 잘라.
2015. 1. 9
글
선구자
눈보라 매섭다고
봉오리마다 숨죽일 때
칼바람에 심지 박아
꽃등 켜든 한 송이 매화
꽃술에
모여든 햇살
꿈을 이룬 저 환희
2015. 1. 8
글
주홍 발찌
솔처럼 살겠노라
황사 짙은 세상에도
심충 모래밭에
난초 한 촉 심어놓고
어둠의 중심을 향해
꽃등 하나 켜들려 했지.
청청한 내 생生 위에
벌레 하나 숨어 커서
깊은 산골 물소리로
닦아내지 못한 얼룩
진주홍 지워지지 않을
발찌 하나 채운다.
2015, 1, 6
글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풍경2
사는 것 우울할 때
시장 길 걸어본다.
상품권 몇 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흥 넘친 호객 소리에
온 몸을 묻어본다.
머리 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알록달록 모자 하나
삐뚜름히 사서 쓰고
갈지자걸음 걸으면
흥청거리는 장마당.
엊그제 백화점에서
못 산 그 옷 사서 입고
고등어 한 손을
왼 손에 묶어 들면
근심들 말끔히 지워져
어깨춤이 절로 이네.
글
중앙시장에서
-시장 풍경1
삶은
상점마다
색색으로 꽃을 피웠다.
꺾여지고
다시 피는
억척스런
사연들이
점멸등 깜빡거리듯
교차되는 중앙시장
글
가정
문 열면 안겨오는
아내의 웃음꽃다발
곤두섰던 털 재우고
바람 묻은 외투를 벗으면
내민 손 반가운 눈빛에서
일어서는 봄 햇살
2014. 12. 24
글
대청호 가을
물빛이 하늘을 닮아
한없이 깊어지는 가을 무렵에
다섯 살 손자 놈 손목을 잡고
대청호 풀숲 길을 걷고 있었다.
생명의 음자리표가
점차로 낮아지는 길모퉁이에서
사마귀 한 마리 마지막 식사를 하려고
두 발로 메뚜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메뚜기 죽는다고
팔짝팔짝 뛰는 손자 곁에서
인과의 어두운 그늘이 고 놈에게 드리울까봐
한참을 망설이고 서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무서워 지르는 손자의 외마디에
깜짝 놀라 눈을 돌리니
사마귀의 강인한 턱이 메뚜기 머리맡에 다가와 있었다.
자연의 바퀴 속에서 생명은 피고 지지만
업연의 짐을 피하기 위해
눈앞에서 한 생명을 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손자 놈 어려울 땐 메뚜기 제가 도와주겠지.
손등으로 사마귀 머리를 탁 치니
메뚜기 신나게 풀숲을 뛰어갔다.
메뚜기의 등 뒤로 저녁 햇살이 모여들었다.
어둠이 가장 두꺼운 대청호 깊은 곳, 내 마음밭에는
하늘의 밝은 별이 내려와 반짝이고 있었다.
2014. 12. 19
<시문학> 2015년 2월호
글
후회
엄 기 창
아침노을 붉게 물든
하늘 한 자락 오려다가
어머님 주무시는 아랫목에
깔아드리고 싶어라.
찬바람 눈보라가 문풍지에 매달려서
밤새도록 으르렁대는 겨울밤에도
어머님 이불 속만은 고운 꿈 피어나게.
이순 넘어 깨달으니 너무 늦어버렸어라.
아침마다 노을 곱게 피어도
덮을 사람 아니 계시네.
아프고 서러운 시절 눈물만 보태드리고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그 시절 다시 오리.
201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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