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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02 퇴임退任 이후
- 2014.10.24 낮달
- 2014.10.24 아우성
- 2014.10.14 주름살 - 시장 풍경 3
- 2014.10.13 맹방 앞바다에서
- 2014.09.28 돝섬
- 2014.09.05 잠 못 드는 새벽
- 2014.08.16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1
- 2014.07.25 춤바위
- 2014.06.27 스타킹
글
퇴임退任 이후
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는
이웃마을 마실가듯
편한 일은 아니다.
익숙한 옷들을 벗고
눈발 아래 서는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으로만 비틀거리며
지난 세월 실을 뽑아
새 날의 그물을 짜며
또 한 발
못 가본 바다에
생生의 기旗를 세운다.
2014. 11. 2
글
낮달
가을비가 씻어놓은
아가의 뽀얀 볼에
엄마가 일 나가면서
뽀뽀뽀 하고 갔는가,
잠든 채
찍어놓다가
일그러진 입술 자국.
햇살이 눈부셔도
방긋 웃는 아가 얼굴
초록별 이야기를
가슴 가득 품고 있네.
비단강
노를 저어서
어디 멀리 가고 있나.
2014. 10. 24
글
아우성
늦가을 아침
산의 속살 더 정결하게 드러난다.
긴 여름 들끓던 폭염
가둬 키운 단풍 한 잎
마지막
못다 한 사랑
펄럭이는 아우성
2014. 10. 24
글
주름살 - 시장 풍경3
호박잎 두어 묶음 마늘 감자 서너 무더기
서둘러 달려가는 찬바람의 뒤꿈치에
할머니 얼굴에 파인 장마 뒤의 깊은 계곡 2014, 10. 13 |
글
맹방 앞바다에서
때로는 삶의 조각들 헝크러진 채
그냥 던져두고
입가에 미소 번지듯 가을이 물들어가는
산맥을 가로질러 와
대양과 마주 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있는 힘껏 키워 돌진하는
저 바다의 거대한 남성
수만 번 부딪쳐 피워내는 파도 위의 포말
예순네 살 침묵하던 나의 젊음이
용틀임하며 끓어오르는 힘줄을 보았다.
맹방 백사장에서 술에 취해
바다를 향해 오줌을 갈기면
천 년의 수로부인도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는 희미한 달빛
밤내 아우성치는 원시의
바람을 모아
한 송이 해당화를 피워놓았다,
2014, 10, 13
<대전문학>67호(2015년 봄호)
『시문학』598호(2021년 5월호)
글
돝섬
황금 돼지 끌어앉고
복을 빌지 말자.
돝섬은
복을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가진 것 버리고 버려
마침내 피부 속에 낀 녹까지 다 닦아내고
남쪽 산기슭
대양으로 가는 길목에
허허한 바위가 되기 위해 오는 곳이다.
머리 위에 갈매기
리본처럼 얹은 채로
섬에 뿌리 내리고
자연으로 숨쉬다가 가는 곳이다.
2014, 9. 28
"대전문학' 66호(2014년 겨울)호
글
잠 못 드는 새벽
사십 년 삶의 그림자에
손 흔들고 돌아설 때에
모든 것 다 놓고 온 줄 알았네.
새벽에
문득 잠 깨어
열린 창으로 비치는 달을 보니
웃음 해맑은 아이들
얼굴 따라와 있네.
바람소리인가, 아이들 목소리도 들리네.
다시 잠을 청해도
까르르 까르르
어두운 방 안 가득 피어나는 꽃들
손바닥 맞은 놈들
손 다 나았을까,
무슨 욕심으로 마지막까지 그리 때렸을꼬!
잠 못 드는 새벽에
다시 헤아려보니
다 버리고 온 줄 알았는데
실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구나.
2014년 9월 5일
'대전문학' 66호(2014년 겨울호)
글
폐지 노인
- 시장 풍경4
굽은 허리 웅크린 채
쩔쩔매는 저 할머니,
수퍼 집 박스 하나
몰래 훔쳐 실었다고
손수레 엎어진 채로
노인 하나 혼나고 있다.
아들은 누워있고
며느리는 도망가고
어린 손자 연필 값에
손이 절로 움직여서
백 원 쯤 박스 하나로
만 원어치는 혼나고 있다.
2014년 8월 16일
글
춤바위
나는
영혼의 샘물처럼
맑은 시구 하나 찾아
헤매는 심마니
아무리 험한 골짜기라도
시의 실뿌리 한 올
묻혀 있다면 찾아갑니다.
칡넝쿨 아래 숨은 절터를 찾고
춤바위에 올라
흥겹게 춤추었던 자장율사처럼
반짝이는 한 파람
가슴을 울리는 노래에도
춤바위에 올라가 춤추는 학이 되겠습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산삼밭을 만난다면
끝없이 춤추다가 돌이 되겠습니다.
글
스타킹
은밀한 바위 틈
뱀이 벗어놓은
긴 허물 하나,
올해는
오는 걸 잊었는가!
밤이면 별빛 새는
꾀꼬리 집에
발 벗어 못 오면
신고 오라는
별빛 뽑아 짜놓은
스타킹 하나.
201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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