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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1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
- 2015.04.25 보성 차밭에서
- 2015.04.17 歲寒圖에 사는 사내
- 2015.04.11 솔향기 길에서 봄을 마시다
- 2015.04.03 나를 따르라
- 2015.03.21 푸념
- 2015.03.07 시조 쓰는 이유
- 2015.03.06 이중잣대
- 2015.02.27 수왕사
- 2015.02.11 행복
글
<청라의 사색 채널>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견리사의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이라는 말씀은 원래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으로 안중근 의사님의 유묵(遺墨)으로 더 유명해진 말이다. 이익을 보면 먼저 의로운 재물인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치라는 이 말은 이익 앞에서 한없이 비겁해지고, 이익을 위해서는 국적을 바꾸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큰 교훈이 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자주 안부를 물어오던 제자에게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어 직장으로 전화를 했더니 보직해임 되어 나오지 않았단다. 하도 기가 막혀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단다. 본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영 받지 않는다. 자식 놈이 그런 일을 당한 듯 궁금하고 속상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소식을 알 만한 그의 친구들에게 다섯 번짼가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 걔 돈 먹고 잘렸대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고놈이 괘씸했지만 참고 연유를 물어보니 옛날 돈을 조금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보직해임이 되었단다. 나는 너무도 기가 막혀 한동안 세상을 다 잃은 듯 넋을 잃고 있었다.
교직생활 초기에 시골 면 소재지 고등학교 아수라장의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다하여 키워낸 금쪽같은 제자였다. 어수선한 면학분위기 속에서도 소신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서울 근교의 명문대 행정학과에 입학을 했고, 경찰 간부시험에 합격하여 총경까지 승진한 제자였다. 정의롭고 봉사심이 많아 나라의 기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던 제자였다. 대전에 와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자랑스러운 제자들을 수없이 길러냈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 엉겅퀴처럼 스스로 자란 제자이기에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였다. 그런 제자가 작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여 허무하게 앞길을 망친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을 강조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이로움이 눈앞에 있을 때 과연 의로운 이로움일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평소에 더없이 청렴하고 깨끗한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재물이 눈앞에 있을 때 의로운 재물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기보다 과연 이걸 먹고 걸릴까 안 걸릴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가 ‘설마 걸리겠어.’하고 꿀꺽 삼켰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요즈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교훈을 생각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 뇌물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그들은 한 번의 잘못 판단으로 전도양양하던 정치생명도 끝장이 나고, 그들을 신뢰하던 많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국적을 버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견위치명(見危致命)의 교훈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눈보라 치는 만주벌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던 선조들은 자신의 목숨이 귀한 줄 몰랐던 분들일까. 나라가 있어야 생존권이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자신의 발전과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선구자들이다. 국민들 모두 양심이 살아있어야 나라가 번창하고, 나라가 건재해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행복마저 지켜진다는 것을 깨닫고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금강일보> 2015년 5월 1일
글
보성 차밭에서
엄 기 창
차나무 가지 끝마다
혼(魂)불 환하게 밝혀드는
저 연초록 손들을 보아라.
흰 눈을 이고 견딘 겨울의
뚝심을 모아
쌉싸래한 맛 속에 숨어있는
상큼한 차향(茶香)을 일으켜 세우나니
삼나무들도 어깨동무하고
눈짓 주고받으며
제암산(帝巖山) 정기를 퍼내어 끝없이 보내주고 있다.
득량만(得粮灣) 파도야,
대양(大洋)을 치달리던 폭풍의 노래들을
엽록소에 담아주려고
밤새도록 뻘밭을 기어오르느냐.
보성 차밭머리에서
성스러운 차 한 잎을 피우기 위해
정결한 머리로 기도하는 오선(五線)의
선율에 취해
다시는 일상(日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2014. 4. 25
<문학사랑> 2015년 여름호(112호)
글
歲寒圖에 사는 사내
그 집에는
울타리가 없다.
사방으로 열려서 신바람 난 바람이
울 밖 같은 울안을
한바탕 휘젓다 가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그 집 사내는
청청한 외로움을 가꾸기 위해
덩굴장미 한 그루 심지 않았다.
덩그렇게 세워 놓은 네그루의 소나무에도
새 한 마리 불러오지 않았다.
제대로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평생을 마음 밭에 겨울만 들여놓고
뜰 밖을 둘러 친 울타리 대신
서릿발 같은 기상 온 몸으로 반짝이며
아예 방문을 지워버리고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고개를 내미는 법이 없다.
2015. 4. 17
<대전문학>68호(2015년 여름호)
글
<기행문>
솔향기 길에서 봄을 마시다
노은동 수산시장 주차장에서 홍 선생 차로 갈아타고 대전을 출발한 것은 봄꽃이 만발했던 4월 8일 오전 7시 30분. 하늘은 큰비라도 쏟아낼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전주의 향란 씨 정년퇴임 기념으로 태안 천삼백 리 절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솔향기길’로 초대를 했는데 비 때문에 올라가보지도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여왕처럼 위해줘야 해”
문득 선영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엄숙하게 한담.
스쳐가는 차창 밖의 봄꽃들에 정신이 팔려있는 명중이, 덕규, 선영이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이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은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대전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대전에 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평생을 몸담아온 교단에서 물러나 허탈해하고 있을 친구를 초대해주고, 그런 친구를 여왕처럼 위해주자는 웃기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순진한 친구들. 내 남은 인생에 저 친구들과 함께라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만대항으로 들어서며 하늘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개었다. 푸른 바다 위로 쏟아지는 4월의 은빛 햇살, 떼 지어 나르는 갈매기 소리, 짭조름한 바다 냄새. 그래, ‘솔향기길’에 간다고 그렇게 가슴이 뛰었던 것은 내 잠재적 의식 속에 4월 바다의 몽환적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풋풋하게 안겨오는 바다의 흐트러진 몸짓 위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만대수산’ 앞에 주차를 하고 ‘솔향기길’ 안내판 뒤 산길을 오른다. ‘솔향기길’은 태안의 상징인 ‘바다’와 ‘소나무’를 테마로 하여 태안군에서 조성한 생태 탐방로인데 현재 5개 코스 51,4km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길은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방제작업을 위해 만든 작은 길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 이원면민회 회장 차윤천 선생이 길을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방제작업이 끝난 이후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따라 산책로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태안군의 협조를 받아 오늘의 이 길을 완성했단다. 우리가 오늘 걸어야 할 길은 다섯 개 코스 중 제일 아름다운 제1 코스 만대항부터 꾸지나무골 해수욕장까지 10,2km. 생업까지 젖혀놓고 이 길에 매달렸을 한 사람의 땀과 의지에 머리가 숙여진다.
등성이로 올라가며 보니 온산이 진달래꽃으로 불이 붙었다. 연분홍으로 혹은 진주홍으로 풀섶마다 바위틈마다 일어난 불길이 산봉우리 가까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꽃 사이로 들어서면 온몸이 불길에 타오를 것만 같다. 산길을 오르는 것도 잊고 모두들 카메라에 이 화려한 봄의 향연을 담아놓느라 정신들이 없다. 왼쪽으로는 가로림만의 풍광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론 중국까지 이어진 서해바다. 봄은 관능적인 몸짓으로 여기 와서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기만 하는 길이 힘들어서일까, 아래로 치달린 길이 백사장으로 이어져 있다. 해안가의 집 몇 채가 옹기종기 정답다. 여기가 큰구매수동. 들어왔다 나간 물 자국 선명한 백사장 끝 작은구매수동 쪽으로 삼형제바위가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같은 터전 안에 있어서 보는 장소에 따라 하나로도 보이고 둘로도 보이고 셋으로도 보이는 이 바위는 한집안에 살을 같이하는 삼형제가 서로 의좋게 지내면서 잘못된 것은 숨겨주고 잘된 것은 드러나게 하는 현상과 같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한다. 가족 간의 정이 이익 앞에 산산이 부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발길 한없이 무겁다.
이름도 정다운 붉은앙뗑이, 새막금쉼터, 큰노루금 등을 지나 당봉전망대에 다다랐다. 섬처럼 양편의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길, 바위들 절묘하게 선 절벽 끝엔 한없는 바다. 날은 활짝 개어 눈을 크게 뜨면 바다 너머 중국이 보일 듯도 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솔향기가 가득 온몸으로 들어온다. 이러다가 온통 솔향기에 절어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또 어떠리. 속진에 절은 몸을 솔향기로 목욕한다면 이보다 더 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매서운 기세는 가셨지만 아직도 드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거기 餘섬이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함초롬히 서 있었다. 해안에서 좀 떨어져 둥그렇게 솟은 모습이 신기하다. 옛날 선인들이 이 섬 이름을 지을 때 이 섬이 유일하게 하나만 남게 될 것을 예견하고 남을 여(餘)자를 붙여서 餘섬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북쪽 가마봉 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여인상으로도 보이고 서쪽 끝부분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남자의 신(腎)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눈썰미가 없어서 그런지 도통 그런 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오묘하게도 절벽 이어진 바닷가에 어찌 또 저런 섬을 지어놓았을까? 조물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여섬을 지나 다시 등성이로 올라가는데 앞서가던 향란 씨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길가에서 뱀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단다. 다 늙은 할머니 뭐가 매력적이라고 봐. 콧방귀를 뀌며 달려가 보니 능구렁이 한 마리 진달래꽃 사이로 황급히 몸을 숨긴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화사(花蛇)’가 생각났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뱀을 보며 시를 읊조리다 보니 친구들은 벌써 산모롱이를 돌아갔다. 봉우리를 넘어가보니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변에 펜션들이 줄지어있다. 시간이 있다면 아름다운 봄의 서정이 넘치는 펜션에서 며칠 쯤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션촌에서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이 용난굴, 해변 절벽 위에 용이 빠져나온 자국인 듯 동굴이 덩그렇다. 동굴 천장엔 안에서부터 밖까지 하얀 바위가 길게 뻗어있는데, 마치 한 마리 용이 굴을 빠져나오다가 바위로 굳은 듯하다. 용난굴 앞바다에서 일어난 파도소리는 용난굴을 채웠다가 비워지고 화석으로 굳은 용의 몸을 쓰다듬고 사라진다. 곰보처럼 고동들로 덮여있는 바위와 절벽에 서있는 해묵은 소나무들. 그럴 듯한 전설 하나 여기 산다고 고개 저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서 수줍게 피어난 하얀 제비꽃을 보았다. 진달래 화려한 자태와 이웃해있어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을 것 같다. 젊었을 때 안보이던 꽃이 늙으니까 보이는 것일까. 이제 내려가면 솔향기 풍기는 봄의 향취를 한참은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정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나는 진달래꽃 향기를 마시고, 봄 바다의 파돗소리를 마시고, 봄 물기 싱싱한 솔향기를 마시고, ‘솔향기길’의 청아한 봄을 몽땅 마셔버렸다.
2015년 4월 11일
<문학사랑> 2015년 여름호(112호)
글
<청라의 사색 채널>
나를 따르라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1974년 2월 말 ROTC 소위로 임관하여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하였다. 소정리역에서부터 구보를 하여 훤히 동트는 새벽 상무대에 도착했을 때 연병장에 새까맣게 앉아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불길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감동하게 했던 것은 보병학교에 걸려있던 부대 구호였다. “나를 따르라!” 이 얼마나 멋진 구호인가.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도 이 구호를 썼는데 이것은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앞장선다는 뜻이며, 가장 위험한 선봉에 지휘관이 모범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 구호 속에는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진을 향해 부하들보다 먼저 튀어나가는 용기와 부하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하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자신에 대한 강한 신뢰가 담겨있다.
보병학교에 도착했던 첫날 떠오르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전율케 했던 이 구호는 내 평생 삶의 구호가 되었으며, 소대장을 할 때도, 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교직자로 교단에 서 있을 때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소대장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교사로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항시 아쉬워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은 어째서 이러한 구호 하나 마음속에 담지 못하는 것일까? 얼마 전 김영란 법(부정청탁 방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되었을 때 나는 한없는 기쁨 속에서도 씁쓸한 마음 한 자락 들고 일어남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민들 누구나가 생각해도 가장 큰 부정의 소지가 있는 정치가, 국회의원에게는 이 법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다. 관민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관피아 방지법에서 관의 핵심이 되는 사람들의 목에 줄이 없는데 이 법이 무슨 큰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은 뒤로 빼면서 부하들에게만 “진격 앞으로!” 한다면 누가 적진을 향해 돌진하겠는가.
이제 국회의원의 국민 지지도가 17%에서 까딱거리게 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 국회에서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꽃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이익과 당리당략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고, 자신들이 요구하는 정책이 관철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강하게 반대하던 사안들도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교환조건으로 찬성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은 장외투쟁을 하다가도 국회의원 봉급 인상이나 연금 책정 같은 법안은 모두 참여하여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가,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당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김영란 법 같은 지뢰밭도 솔선해서 앞장서고, 자식들 군대도 앞장서서 보내야 한다. 여당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같은 것 인식하지 말고 대통령이 옳게 국정을 꾸려가도록 그림자처럼 도와줘야 하고, 야당 대표는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에 이익이 되는 일에는 박수쳐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위험한 곳에 자신이 앞장섰을 때, 큰 이익을 양보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따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목소리가 우렁찰 때 국민이 의심 없이 믿어주고 밀어주며 뒤를 따르는 것이다.
<금강일보> 2015년 4월 3일
글
푸념
친구 상가 들렀다가 새벽 두 시 들어와서
열 시까지 잠자다가 열한 시 차 타고 가선
“아빠야, 지난 삼월에 아빠 보러 갔었잖아.”
아들아, 네가 무슨 스쳐가는 바람이냐?
네 자취 희미해서 왔던 기억 전혀 없다.
길 가다 문득 만나도 몰라볼까 두렵다.
2015, 3, 14
글
시조 쓰는 이유
내 행복
듬뿍 풀어
시조 한 수 빚는다.
툰드라의 가슴마다
햇살 씨앗 깊게 심어
벌 나비
날갯짓 하는
봄꽃 가득 피우려고.
2015. 3. 7
글
<청라의 사색 채널>
이중잣대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아일랜드의 어느 항구 도시의 사창가에 두 명의 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 목사 한명이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사창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수병들은 위선자라고 목사를 비웃었다. 잠시 후에 랍비 한 사람이 나타나서 역시 주위를 살핀 후에 사창가로 들어가자 수병들은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다고 비웃었다. 잠시 후에 카톨릭 신부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사창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수병들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세상에. 어떤 가엾은 매춘부가 죽어가나 봐.“
이 이야기는 '엉뚱한 철학자의 이야기'에서 발췌한 일부이다. 목사나 랍비, 신부 모두 타락한 성직자들인데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카톨릭 신부만 유난히 후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위와 같은 ‘이중잣대’가 심해지고 있는 듯하여 씁쓸할 때가 많다.
얼마 전 추석명절에 고향엘 내려갔을 때 이야기다. 그 때 정부 고위 관리 아들의 병역 비리 문제로 사회가 들썩이고 있었는데, 형님 친구 한 분이 뉴스를 보고 몹시 흥분하여 심한 욕설을 하였다. 평소에 그 분의 인품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음에 다시 고향에 갔을 때 아침 일찍 그 분이 우리 집엘 찾아오셨다. 내 아우가 현역 중령일 때였는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싸들고 와서 한다는 말이 “ 여보게, 내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 있는데 좀 편한 데로 갈 수 없는가?”
위의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의 일엔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도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일에 관해서는 너그럽기 마련이다. 얼마 전 국무총리 인준에 관한 청문회를 시청하다가 질의하며 호령하는 그분들은 과연 얼마나 청렴하고 깨끗한 분들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자신의 주머니를 뒤집으면 더할 수 없는 먼지가 나올 텐데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소리를 지를까. 자신의 부정은 부정이 아니고 남의 부정만 과연 부정일까.
요즈음 정당 정치에서도 이런 모습은 확연히 나타나는데, 여당에서 내놓은 정책은 일단 반대부터 하고 깎아내리는 야당들이 자신들이 여당이 되었을 땐 그런 작태를 일삼는 야당의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다시 야당이 되었을 땐 승산이 없으면 국회야 정상적으로 돌아가든 말든 민생이야 어떻게 되든 장외 투쟁이나 하고.
오랜 교직생활에서 경험한 사실인데 때로는 교사 학부모가 다른 직업의 학부모보다 더 모질고 무서울 때가 있다. 자신은 교직 현장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담임에게 요구하며 요구가 달성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불평하고 괴롭힌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다. 이중잣대를 잘 표현한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냉정할 일은 나에게도 냉정하고, 나에게 관대할 일은 남에게도 관대하면 안 될까? 때로는 나에게 적대적인 세력일지라도 잘하는 일은 칭찬해주고 더 잘 되게 밀어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 이중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이런 사회가 바로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금강일보> 2015년 3월 6일자
글
수왕사
향냄샌가
숨을 크게 들이쉬면
나무 냄새
독경 소리인가
귀를 쫑긋 세우면
바람 소리
단청을 지우고
사바로 통하는 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한 파람 남겨두어
모악산 제일봉에
내려왔던 부처님
간절한 발원發願 소릴
제일 먼저 듣는 절
2015. 2. 27
글
행복
아내의 칼 도마소리는
기도이다.
기도의 울림으로 더욱 고요로운
창가에 앉아
찻잔에 햇살을 풀어 마시면
아파트 정원수 흔들고 달아나는
바람소리도
대숲 바람소리로 들을 수 있다.
창밖 먼 산 초록빛이
봄을 이고 달려와 가슴에 안긴다.
봄하늘로 나른한 눈을 헹구고
아내를 바라보면
새싹처럼 돋아나는 행복
아내가 거기 있어서
집안은 늘 따뜻하다.
201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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