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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막내아우가 카카오 톡으로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아우의 대학 졸업식 때 찍은 어머니 사진이었다. 아우의 졸업식 가운에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들으셨다. 무심한 표정 속에서 살풋 미소가 내비친다.
나는 아우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대학 졸업식에도 틀림없이 오셨을 터인데 졸업식 예복을 입혀 사진을 찍어드릴 생각은 왜 못했던고. 논 열 마지기 남짓의 궁핍한 시골 살림인데도 내 밑 형제들이 줄줄이 대학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은혜를 깜빡깜빡 잘도 잊는다. 아우가 보낸 사진을 보면서 나는 한참이나 눈물에 젖어있었다.
아버지는 인정이 많고 인품도 훌륭하다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늘 칭송을 들었지만 생활에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으셨다. 놀음을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지만, 가을걷이가 끝나면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늘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시다가 어느 날 휙 하고 나가시면 봄이 무르익어 농사철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다.
겨울이 끝나갈 때쯤이면 봄바람보다 흉한 소문이 먼저 집으로 건너왔다.
“기챙이네 못살게 되었다더라.”
소문이 건너온 날 저녁이면 어머니는 우리를 재워놓고 소리죽여 우셨다. 6남매를 데리고 또 한 해를 보내실 일이 아마 막막하셨을 것이다. 실상 아버지께서 겨우내 지어놓은 빚이란 게 쌀 일곱, 여덟 가마에 불과했지만, 팍팍한 농촌 살림에 그 정도면 충분히 못살게 될 만한 빚이었다. 너그러운 아버지 성품에 딸 때는 개평 팍팍 주고 잃을 때는 고스란히 잃으시며 겨우내 먹고 자고 하였으니 그 정도의 빚은 그래도 가족들을 배려한 최대한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어느 핸가는 할아버지 제삿날이 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내 행방도 알 수 없이 떠도시다가 며칠 전 마을 주막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었다.
“기챙아, 할아버지 제사 지내게 아버지 모셔 와라.”
나는 밤길이 무서운데도 주막으로 내려갔다. 오래 못 본 아버지가 보고 싶기도 하였다. 아버지께서 마작을 하시는 방문에 대고
“아버지, 할아버지 제사지내야 된다고 어머니가 모셔 오래요.”
한참 있다가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다. 좀 기다려라.”
30분을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열띤 사람들의 호흡소리만 넘어왔다. 아니, 겨우내 못 보고도 아들이 보고 싶지도 않나. 나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가 빨리 오래요.”
“알았다. 거의 다 됐다.”
날 선 내 목소리를 느꼈을 터인데도 아버지는 태평하기만 했다. 무엇이 다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한 시간을 또 기다렸다. 동생들은 자다가 쌀밥 좀 먹겠다고 억지로 일어났지만 또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자정이 다 되어가지 않는가. 나는 잔뜩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아버지, 날 새겠어요.”
문 안에서는 한참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딱딱 마작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
“음, 안되겠다. 너희들끼리 그냥 지내라.”
나는 열불이 나서 문을 열어젖히고 마작 판을 확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었다.
“뭐 저런 아버지가 다 있어. 아버지가 저래도 돼?”
돌아가는 길에 팔풍쟁이 고개로 치달리는 바람마저도 얄밉게 느껴졌다.
그렇게 겨울만 되면 대책 없어지는 남편과 한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였다. 더구나 6.25사변 통에 두 아들을 잃고 평생 가슴에 못 박힌 채로 살아오신 어머니였다. 14살 된 형을 묻었다는 바위 어귀에 가실 때면 어머니는 넘어지면서도 눈을 감고 걸으셨다. 자식을 먼저 묻은 모진 운명에 대해 외면하고 싶으셨으리라. 전쟁이 끝나자마자 태어나서 집안의 어둠을 말끔히 씻어준 아들이, 더구나 초등학교 6년 동안 반장에 1등을 도맡아 한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예뻤겠는가. 그런 아들을 읍내 중학교에 보낼 수 없음을 늘 가슴아파하던 어머니였다. 마곡사에서 운영하던 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가서 검정고시에 합격을 해도 고등학교에 입학시켜줄 엄두도 못 내시던 어머니. 나는 내 신세가 하도 서러워서 부모님과 같이 밭을 매다가 호미를 집어던지고 꺼이꺼이 울었다. 장학금을 준다는 고등학교도 있으니 방 하나만 얻어달라고 떼를 썼다. 밭가의 뽕나무 가지를 꺾어다 종아리를 치시던 어머니도 나를 붙잡고 우셨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소리 내어 웃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모습이 웃는 모습인지도 알 수가 없다. 동생의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에 나타난 그 오묘한 표정이 웃음인지 아닌지도 나는 파악할 수 없어서 그냥 한참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이젠 웃으셔도 돼요. 그 아픈 세월에 아들을 세 명이나 석사모 씌우셨으니 어머니는 박사모를 쓰셔도 충분하다니까요.”
2016. 3. 13
『문학사랑』 2016년 여름호(116호)
<한밭수필>2016(8호)
글
여름날 아침
풀잎 끝에 대롱거리는
이슬을 보다
나는 이슬에 갇혔었지.
하늘은 왜
투명한 목소리로 거기 박혀있을까
모란 꽃잎 위에 속살거리는
별들의 이야기 방울은
왜 수박 속처럼 맛이 있을까
구슬 빛에 홀려서
밤새도록 사연 깊게 울어대던
두견새 울음을 꿰어
영롱한 목걸이 하나 만들고 싶었지.
툭 하고 떨어져 꿈이 깨어질까봐
불어오는 실바람도
체로 치고 싶었지.
세상이 모두 신기하고
찬란하게 보이던
내 손자만한 그런 날 여름 아침에
『한국문학인』2016년 여름호
글
글
인동초忍冬草
세월이 허물고 간 산 밑 빈 집 담 자락에
인동초忍冬草 꼭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적막
그리움 안으로 익어 하얀 꽃을 피웠다.
우측으로 감아 가면 정든 얼굴 떠오를까
대문 닫힌 긴 겨울을 초록으로 견딘 아픔
기다림 눈물로 삭아 노랗게 꽃잎 바랬다.
임자 없는 몸이라서 사연 더욱 만발했나
소쩍새 울음에도 반색하며 떨고있다.
벌 나비 담아가다 만 향기 자욱히 퍼진다.
2016. 3.22
글
꽃밭에서
눈물에서 실을 뽑아
가슴 울리는
그런 시의 베 한 자락 짜지 못할 지라도
꽃에 묻혀서
꽃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온 세상 한숨의 바다를
환한 꽃으로 불 질렀으면 좋겠네.
2016. 3. 18
글
목련 이제二題
자목련
서설瑞雪로 씻은
지등紙燈이다.
하늘 물살
불 밝히는
아직도 매운 세상
누군가의 바람인가
겨울 끝
시린 인심을
맑은 향기로 데운다.
백목련
옥양목 치마저고리
장롱 속에 묻어 놓고
겨우내
설렘을
가꿔 오신 어머님
봄 오자
곱게 차려입고
봄나들이 나오셨네.
글
키질의 법칙
가벼운 검불들 새처럼 날아가고
무거운 알곡들만 사락대며 남아있다.
어머니 키를 까불 때 변치 않는 법칙이다.
머리 헐고 코 흘리고 지독히 말 안 들어도
어머니 가슴 속에 우리 형젠 알곡이다.
키에서 벗어달 때면 불을 켜고 찾는다.
글
자목련
여리고 성긴 몸이 된바람에 숨 멎을까
짚으로 싸매주며 긴 겨울 잠 설쳤더니
아이의 첫 울음같이 빚어 켜든 달 한 등
글
길
평탄한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발이 꼬일 때가 있다.
누가 네 발목을 잡는가.
돌부리 하나 솟지 않은 맨땅
네 발을 거는 것은 네 스스로의 욕심
버려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솟아올라라.
인생이 송두리째
넘어지기 전에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2016. 2. 14
글
나이 유감遺憾
나는 버스를 탔을 때 자리가 없으면 젊은이들과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젊은이도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또 자리를 양보할 처지가 못 되어 앉아있는 젊은이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불안해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손잡이를 잡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전면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접혀지는 도로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혹시 비틀거려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안정감 있게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새 나도 자리를 양보할 나이에서 양보 받을 나이가 되었는가.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나지도 않았는데 세월은 저만큼 가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도 가을이 되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긴장시키는 내 나이에 대해 나는 유감이 많다.
며칠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가장교를 건너는데 버스가 휘청 하여 내 자세가 좀 흔들렸나보다. 앞에 앉았던 50대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 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저 말인가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바로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가지고 놀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로 가버렸다.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제 딴엔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역전에서 내릴 때까지 뒤편에 서있는 그 학생을 보며 마음이 짠하고 불편했다. 염색은 세월을 속이는 것 같아 정말 싫지만 빨리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언젠가 이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80대 할아버지는 서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휴대폰만 가지고 놀았다. 할아버지가 힘겹게 서서 흔들거리는데도 그 학생은 본 척도 않고 놀이에만 열중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후닥닥 일어나서 뒤로 도망을 갔다. 그 할아버지는 제 자리인양 얼른 앉아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 저런 주책맞은 영감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다. 젊은이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내 손자가 버스 안에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있지만, 그러나 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만 편해지기 위해 학업에 지친 어린 학생들에게 억지로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그런 어른은 없어야겠다.
2016.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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