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운 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

문득문득 피어나는 오색구름 같은

그리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바람 불고 가시덤불 우거진

고갯길

뒤돌아보지는 말자.

바위 그늘에 앉아 그냥 그리워만 하자.

다시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 1. 25

posted by 청라

보리수나무

시조 2016. 1. 22. 09:16

보리수

 

 

아침에는 독경 소리 저녁에는 풍경 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여 묵언 참선 하더니

깨달음 동그랗게 키워 초록 열매 달았다

 

내 안에 나를 익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번뇌를 사르었다 법열이 타올랐다

황금빛 환희를 꿰어 염주 알을 엮는다

 

 

 

2015. 1. 22

posted by 청라

천수만에서

시조 2016. 1. 17. 10:04

천수만에서

 

 

언젠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 날이 오거든

생명줄 잘린 채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천수만 날갯죽지에 삶의 한 조각 실어보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사방 온통 막힌 남자

신생대부터 이어오던 리아스식 호흡들이

어느 날 흙 몇 삽으로 꽁꽁 묶여 버린 남자.

하늘빛 꿈 잃었다고 주저앉으면 남자더냐.

사니질沙泥質 아랫도리에 새조개를 살게 하고

품 열어 오지랖 넓게 철새 노래 키운다.

바람기 많은 남자 중에 천수만이 제일이다.

가창오리 흑두루미도 품었던 품속에서

유유히 노랑부리저어새 털가슴을 고르고 있다.

누가 알리 갈적색 썩어가는 핏물 아픔

비 오는 날 갈대밭에 출렁이는 속울음을

해 뜨면 맑게 씻은 눈 속 깊은 저 아버지를.


사니질 모래와 진흙이 섞여 있는 흙의 성질

 

 

201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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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산골 마을

시조 2016. 1. 14. 08:42

2016, 산골 마을

 

 

퀭한 골목

무너진 담

듬성듬성

불 꺼진 집

 

꼬부랑

할머니

혼자

고샅길

걸어가서

 

쾅쾅쾅

대문 두드려도

 

깨어날 줄

모르는 마을


201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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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시장 풍경5

시조 2016. 1. 12. 07:09

비둘기

            -시장 풍경5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하루 종일 찍어 봐도

허기진 건

숙명이다.

싸전의 주인은

쌀알 한 톨 안 흘리네.

구구구

나직한 신음

핏빛으로 깨진 평화.


2016. 1.  12

posted by 청라

산화공덕散花功德

시조 2016. 1. 11. 08:41

산화공덕散花功德

 

 

법당은 바람이 쓸고

내 마음은 부처님 눈빛이 씻고

 

절한다

산 뻐꾸기

놀자 절문 두드려도

 

 

벚 꽃비 온 세상 가득

팔             팔

    랑             랑

팔              팔

     랑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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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에 기대어

시조 2016. 1. 10. 08:22

일주문에 기대어

 

 

들어가면

바람 되고

나오면

티끌 되네.

 

바람도

티끌도

내 몸에는

안 맞는 옷

 

일주문 기대어 서서

그냥 허허 웃으려네.


2016. 1. 9

posted by 청라

삼불봉 해맞이

 > 종합뉴스 > 사람들
[시가 있는 목요일] 삼불봉 해맞이
엄기창  |  chungnamilb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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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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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더 큰 가슴을 열어 해를 맞아보자.

상서로운 햇살을
경상도의 골목에만 고이게 하지 말고
전라도의 골목에만 고이게 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온 골목을
비추게 하자.

꿈이 없는 젊은이들의 마을에
매화꽃을 피워주고

제야除夜의 어둠이 빙산처럼 버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뒤뜰에도
희망이 움트게 하자.

올바른 일에는 박수치고 밀어주며
그른 일은 한마음으로 꾸짖으며

좌익도 우익도 버리고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 하나가 되자.

새해에는
더 뜨겁던 시절의 열정을 찾아보자.

그리하여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엔진에
날개를 달아주자.


posted by 청라

금강 하구河口에서

시조 2016. 1. 8. 07:36


금강 하구河口에서

 

 

어릴 때 띄워 보낸

그리움의 씨앗들아!

대양大洋을 떠돌면서

내 마음 못 전하고

하구河口에 주저앉아서

갈대꽃으로 피었구나.

 

아쉬움이 고여서

젖어있는 습지濕地 머리

삭히고 씻은 말들

솜털처럼 내두르며

삭풍에 시잇 시이잇

온몸으로 울고 있다.

 

육십 년을 목청 돋워

날 부르고 있었는가

실처럼 가는 목이

된바람에 애처롭다.

철새들 한 입 물었다가

뱉어내는 목 쉰 외침.


2016. 1.8





posted by 청라

가시

가시

 

 

탱자나무 큰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려고

한사코 침을 세운 것은 아니다.

 

탱자의 신 맛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허공을 향해 그냥 솟았다가

탱자 빛깔로 물들어 무디어질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가시보다

보이지 않는 가시가 무서운 법이다.

 

네 혀는

누구를 해치려고 그렇게 날카로운 것이냐

탱자나무 가시보다 더 크고 험상궂은

감춰진 가시

 

남의 속살을 헤집어

아프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고

그래서 네가 빛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찌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네 숙명이 슬프다.

세우는 것보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너희들의 성때문에

 

깃발 들고 목소리 큰 자들은

양지쪽에 모여들고

입 다문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늘로 밀려나고 있다.

 

가시 풀 무성하게 우거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며

철없던 시절

박수치며 환호하던 그 손으로

 

그 손에 쥐어진

내 한 표의 힘으로

너희들을 봉인封印한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고

가꿀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2015. 12. 29

문학저널163(20176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