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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14 길
- 2016.02.07 나이 유감遺憾
- 2016.02.05 청우정聽雨亭에서
- 2016.01.25 삶
- 2016.01.22 보리수나무
- 2016.01.17 천수만에서
- 2016.01.14 2016, 산골 마을
- 2016.01.12 비둘기 -시장 풍경5
- 2016.01.11 산화공덕散花功德
- 2016.01.10 일주문에 기대어
글
길
평탄한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발이 꼬일 때가 있다.
누가 네 발목을 잡는가.
돌부리 하나 솟지 않은 맨땅
네 발을 거는 것은 네 스스로의 욕심
버려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솟아올라라.
인생이 송두리째
넘어지기 전에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2016. 2. 14
글
나이 유감遺憾
나는 버스를 탔을 때 자리가 없으면 젊은이들과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젊은이도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또 자리를 양보할 처지가 못 되어 앉아있는 젊은이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불안해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손잡이를 잡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전면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접혀지는 도로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혹시 비틀거려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안정감 있게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새 나도 자리를 양보할 나이에서 양보 받을 나이가 되었는가.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나지도 않았는데 세월은 저만큼 가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도 가을이 되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긴장시키는 내 나이에 대해 나는 유감이 많다.
며칠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가장교를 건너는데 버스가 휘청 하여 내 자세가 좀 흔들렸나보다. 앞에 앉았던 50대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 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저 말인가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바로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가지고 놀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로 가버렸다.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제 딴엔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역전에서 내릴 때까지 뒤편에 서있는 그 학생을 보며 마음이 짠하고 불편했다. 염색은 세월을 속이는 것 같아 정말 싫지만 빨리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언젠가 이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80대 할아버지는 서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휴대폰만 가지고 놀았다. 할아버지가 힘겹게 서서 흔들거리는데도 그 학생은 본 척도 않고 놀이에만 열중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후닥닥 일어나서 뒤로 도망을 갔다. 그 할아버지는 제 자리인양 얼른 앉아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 저런 주책맞은 영감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다. 젊은이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내 손자가 버스 안에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있지만, 그러나 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만 편해지기 위해 학업에 지친 어린 학생들에게 억지로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그런 어른은 없어야겠다.
2016. 2. 8
글
청우정聽雨亭에서
솔 기둥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는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사념思念들이
빗질되어 말갛게 가라앉고
마곡천 물소리 속에 묻어온
독경讀經 소리에
한 송이씩 어두운 마음의 뜰을
밝히는 풀꽃
빗소리는
거울이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내 안의 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글
삶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운 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
문득문득 피어나는 오색구름 같은
그리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바람 불고 가시덤불 우거진
고갯길
뒤돌아보지는 말자.
바위 그늘에 앉아 그냥 그리워만 하자.
다시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 1. 25
글
보리수
아침에는 독경 소리 저녁에는 풍경 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여 묵언 참선 하더니
깨달음 동그랗게 키워 초록 열매 달았다
내 안에 나를 익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번뇌를 사르었다 법열이 타올랐다
황금빛 환희를 꿰어 염주 알을 엮는다
2015. 1. 22
글
천수만에서
언젠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 날이 오거든
생명줄 잘린 채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천수만 날갯죽지에 삶의 한 조각 실어보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사방 온통 막힌 남자
신생대부터 이어오던 리아스식 호흡들이
어느 날 흙 몇 삽으로 꽁꽁 묶여 버린 남자.
하늘빛 꿈 잃었다고 주저앉으면 남자더냐.
★사니질沙泥質 아랫도리에 새조개를 살게 하고
품 열어 오지랖 넓게 철새 노래 키운다.
바람기 많은 남자 중에 천수만이 제일이다.
가창오리 흑두루미도 품었던 품속에서
유유히 노랑부리저어새 털가슴을 고르고 있다.
누가 알리 갈적색 썩어가는 핏물 아픔
비 오는 날 갈대밭에 출렁이는 속울음을
해 뜨면 맑게 씻은 눈 속 깊은 저 아버지를.
★사니질 : 모래와 진흙이 섞여 있는 흙의 성질
2016. 1. 17
글
2016, 산골 마을
퀭한 골목
무너진 담
듬성듬성
불 꺼진 집
꼬부랑
할머니
혼자
고샅길
걸어가서
쾅쾅쾅
대문 두드려도
깨어날 줄
모르는 마을
2016. 1. 14
글
비둘기
-시장 풍경5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하루 종일 찍어 봐도
허기진 건
숙명이다.
싸전의 주인은
쌀알 한 톨 안 흘리네.
구구구
나직한 신음
핏빛으로 깨진 평화.
2016. 1. 12
글
산화공덕散花功德
법당은 바람이 쓸고
내 마음은 부처님 눈빛이 씻고
절한다
산 뻐꾸기
놀자 절문 두드려도
벚 꽃비 온 세상 가득
팔 팔
랑 랑
팔 팔
랑 랑
글
일주문에 기대어
들어가면
바람 되고
나오면
티끌 되네.
바람도
티끌도
내 몸에는
안 맞는 옷
일주문 기대어 서서
그냥 허허 웃으려네.
201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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