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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길
걷다 보면 길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네.
돌아보면 나의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어.
예쁜 꽃들이 언제나
건강하게 웃어주었고
상큼한 바람들이
내가 뿌려주는 물 더 촉촉하게 적셔 주었지.
씨 뿌리고 거름 주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나무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어두운 세상
한 등 한 등 밝히는 일 신나는 일이었네.
내 길이 끝나는 곳에 솔뫼가 있고
솔 꽃들아!
너희들의 향기 속에서 닻을 내리니 행복하구나.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네.
때로는 바람 불고 눈보라도 날렸지만
이 길은 내게 천상의 길이었네.
2014. 5. 22
글
생명의 선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는 콧노래 속으로
잠자리 한 마리 날아든다.
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
내 비명에 부딪혀 추락하는
작은 몸뚱아리
도망가도 도망가도
유리창에 붙어 따라오는
잠자리의 단말마
유월의 초록빛 산하가
피에 젖는다.
내가 끊어놓은 생명의 선이
바람도 없는데 위잉 위잉 울고 있다.
2014. 5. 27
글
사랑싸움
사랑싸움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진다.
아내와의 싸움엔
내가 늘 진다.
싸움도 꽃이라면
우리 화원엔
지는 꽃 빛깔이 더 찬란하다.
2014. 5. 20
글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심청이 인당수에서
꽃으로 지듯
세월호에 갇힌 넋들 꽃비 오듯 지던 날은
심 봉사 온몸으로 울던
몸부림처럼
바다도 하루 종일 웅얼거렸다.
소금보다 짠 사람들의 눈물을 모아
자다가 소스라쳐 울부짖는
애비 에미의 아픔을 모아
용왕님께 빈다면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한 송이씩 해말간 얼굴들
“엄마” 부르며 피어나서
진도 옆 온 바다가
온통 연꽃으로 물들어 출렁였으면 좋겠네.
오늘 아침 대한 사람들 모두
심 봉사 눈 번쩍 뜨고
손뼉 치며 일어나듯
“와!!!!!!!”
하는 함성으로 강산이 무너졌으면 좋겠네.
2014. 4. 18
글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세월 가는 걸
잊다가
내 신발 신발장 밖으로
밀려나는 줄도 몰랐네.
2014. 4. 17
글
글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글
독도
그리움의 높이만큼 해당화 꽃 하나 켜고
피멍울 속울음을 파도에 갈고 갈아
대양의 폭풍우 향해 질긴 날을 세운다.
먼 수평 하늘가에 흰 돛 한 폭 나부끼면
설렘을 먼저 알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사랑은 사치이로세. 마음 다시 다잡는 섬.
2014. 3. 13
글
황사黃砂
제주에서 날아올라 청주 공항 오며 보니
바다도 산도 마을도 황사에 잠겨 있다.
봄 물기 오른 산하가 딸꾹질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찾아오던 봄 불청객 고비 황사
대륙의 몸부림에 독기까지 배어 있다.
뻐꾹새 울다 목메어 자지러진 회색 빛 숲.
집집마다 창 내리고 앞산도 멀어지고
비질 된 골목처럼 비어가는 반도의 거리
일찍 핀 나뭇잎들만 분 바르고 서 있다.
차 한 대 없던 옛날도 편서풍 따라 봄에
서해 건넌 모래 먼지 송화처럼 내렸는데
증명할 방법 있냐고? 후안무치한 놈들!
2014. 2. 2
글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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