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조赤潮

적조赤潮

 

 

심한 멍 자국 짓물러

바다의 신음은

온통 열꽃 빛이다.

 

돌아누울 힘도 없어서

혼절한 채 끙끙대는

파도는 온통 앓는 소리다.

 

 

posted by 청라

슬픈 바다

슬픈 바다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

세상의 눈물 나는 일들은

모두 바다에 모여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반란군에 살해당한

어미의 슬픔과

플라스틱 병을 삼키고 허연 배를 드러낸

고래의 눈물이

소용돌이로 울고 있다.

더 이상 버리지 마라.

아침 해를 띄워 올리는

저 바다의 싱싱한 웃음 뒤에

한 그루씩 죽어가는

산호의 비명이 포말泡沫로 부서지고 있느니.

바다는 스스로 늘 제 몸을 닦고 있지만

이미 흠뻑 젖어

더 이상 젖을 곳이 없다.

세상이 버리는 아픔

모두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posted by 청라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엄기창론 2021. 5. 29. 08:53

이달의 문제작

 여성 편향적 삶의 풍경

                                                              한상훈문학평론가

 

 

 『시문학5월호엔, 세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다. 황홀했거나 쓰라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시점에서 호출해서 그 순간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시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밀한 시적 세공도 필요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사건들이기 때이다.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 몇 작품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우선 엄기창 시인의 작품부터 들어가 보자.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

두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홀로 커피를 마신다.

외로움이 커피 향으로 묻어난다.

창밖 먼 바다엔 어디로 가는지

배 한 척 멀어지고

유리창에

갈매기 소리들이 부딪혀 떨어진다.

                                -엄기창,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부분

 

 첫 구절에서 사랑에 대한 단정을 단호하게 내린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사랑 또는 삶의 오묘함에 대해 시인은 이미 도사처럼 터득한 듯하다. 겹겹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인생은 나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욕망의 종창역은 대부분 더 꼬이게 되고, 결국 인생은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욕망을 비워내어 그냥 자연의 질서에 나를 맡겨보니,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의 여유가 생겨, 행복이 슬쩍 찾아온다. 그러기에 시인은 사랑하던 님이 가고 야속하기만 하지만 허전한 상태로 내 마음을 하염없이 풀어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찻집에서커피도 호사롭게 두 잔을 시켜 놓았다. 그만큼 상처의 시간은 지나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서, 넓고 푸른 바다에 점점 작아지고 있는 배 한 척이 보인다. 다시 외로워진다. 그러나 미소가 머문다. 완전한 사랑이 있겠는가. 사랑이 머무는 것도 잠시인 것을. 비록 외롭지만 달콤해지는 것이다. 애틋한 그리움은 서랍 속에 숨겨놓은 보석처럼 가끔씩 꺼내 보면서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빛날 수 있기에.

 

                                                  『시문학20216월호(599)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