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시조 2016. 2. 23. 09:12

자목련

 

 

여리고 성긴 몸이 된바람에 숨 멎을까

짚으로 싸매주며 긴 겨울 잠 설쳤더니

아이의 첫 울음같이 빚어 켜든 달 한 등

posted by 청라

 

 

평탄한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발이 꼬일 때가 있다.

 

누가 네 발목을 잡는가.

돌부리 하나 솟지 않은 맨땅

네 발을 거는 것은 네 스스로의 욕심

 

버려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솟아올라라.

 

인생이 송두리째

넘어지기 전에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2016. 2. 14

 

posted by 청라

나이 유감遺憾

수필/서정 수필 2016. 2. 7. 09:33

나이 유감遺憾

 

 

  나는 버스를 탔을 때 자리가 없으면 젊은이들과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젊은이도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또 자리를 양보할 처지가 못 되어 앉아있는 젊은이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불안해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손잡이를 잡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전면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접혀지는 도로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혹시 비틀거려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안정감 있게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새 나도 자리를 양보할 나이에서 양보 받을 나이가 되었는가.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나지도 않았는데 세월은 저만큼 가버리고 말았다. 내 나이도 가을이 되어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긴장시키는 내 나이에 대해 나는 유감이 많다.

  며칠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가장교를 건너는데 버스가 휘청 하여 내 자세가 좀 흔들렸나보다. 앞에 앉았던 50대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 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저 말인가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바로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가지고 놀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로 가버렸다.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제 딴엔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역전에서 내릴 때까지 뒤편에 서있는 그 학생을 보며 마음이 짠하고 불편했다. 염색은 세월을 속이는 것 같아 정말 싫지만 빨리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언젠가 이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80대 할아버지는 서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휴대폰만 가지고 놀았다. 할아버지가 힘겹게 서서 흔들거리는데도 그 학생은 본 척도 않고 놀이에만 열중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후닥닥 일어나서 뒤로 도망을 갔다. 그 할아버지는 제 자리인양 얼른 앉아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 저런 주책맞은 영감이 다 있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다. 젊은이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내 손자가 버스 안에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있지만, 그러나 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만 편해지기 위해 학업에 지친 어린 학생들에게 억지로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그런 어른은 없어야겠다.


2016. 2. 8

posted by 청라

청우정聽雨亭에서

청우정聽雨亭에서

 

 

솔 기둥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는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사념思念들이

빗질되어 말갛게 가라앉고

 

마곡천 물소리 속에 묻어온

독경讀經 소리에

한 송이씩 어두운 마음의 뜰을

밝히는 풀꽃

 

빗소리는

거울이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내 안의 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posted by 청라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운 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

문득문득 피어나는 오색구름 같은

그리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바람 불고 가시덤불 우거진

고갯길

뒤돌아보지는 말자.

바위 그늘에 앉아 그냥 그리워만 하자.

다시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 1. 25

posted by 청라

보리수나무

시조 2016. 1. 22. 09:16

보리수

 

 

아침에는 독경 소리 저녁에는 풍경 소리

법당 문에 귀 기울여 묵언 참선 하더니

깨달음 동그랗게 키워 초록 열매 달았다

 

내 안에 나를 익혀 서쪽으로 뻗은 가지

번뇌를 사르었다 법열이 타올랐다

황금빛 환희를 꿰어 염주 알을 엮는다

 

 

 

2015. 1. 22

posted by 청라

천수만에서

시조 2016. 1. 17. 10:04

천수만에서

 

 

언젠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 날이 오거든

생명줄 잘린 채로 억척스레 살아가는

천수만 날갯죽지에 삶의 한 조각 실어보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사방 온통 막힌 남자

신생대부터 이어오던 리아스식 호흡들이

어느 날 흙 몇 삽으로 꽁꽁 묶여 버린 남자.

하늘빛 꿈 잃었다고 주저앉으면 남자더냐.

사니질沙泥質 아랫도리에 새조개를 살게 하고

품 열어 오지랖 넓게 철새 노래 키운다.

바람기 많은 남자 중에 천수만이 제일이다.

가창오리 흑두루미도 품었던 품속에서

유유히 노랑부리저어새 털가슴을 고르고 있다.

누가 알리 갈적색 썩어가는 핏물 아픔

비 오는 날 갈대밭에 출렁이는 속울음을

해 뜨면 맑게 씻은 눈 속 깊은 저 아버지를.


사니질 모래와 진흙이 섞여 있는 흙의 성질

 

 

2016. 1. 17

posted by 청라

2016, 산골 마을

시조 2016. 1. 14. 08:42

2016, 산골 마을

 

 

퀭한 골목

무너진 담

듬성듬성

불 꺼진 집

 

꼬부랑

할머니

혼자

고샅길

걸어가서

 

쾅쾅쾅

대문 두드려도

 

깨어날 줄

모르는 마을


2016. 1. 14

 

 

posted by 청라

비둘기 -시장 풍경5

시조 2016. 1. 12. 07:09

비둘기

            -시장 풍경5

 

 

눈 녹는 시장 골목

비둘기는

맨발이다.

신발전 털신 한 짝

사 신기고 싶구나.

종종종

서둘러 가는

머리 위엔 하얀 눈발.

 

하루 종일 찍어 봐도

허기진 건

숙명이다.

싸전의 주인은

쌀알 한 톨 안 흘리네.

구구구

나직한 신음

핏빛으로 깨진 평화.


2016. 1.  12

posted by 청라

산화공덕散花功德

시조 2016. 1. 11. 08:41

산화공덕散花功德

 

 

법당은 바람이 쓸고

내 마음은 부처님 눈빛이 씻고

 

절한다

산 뻐꾸기

놀자 절문 두드려도

 

 

벚 꽃비 온 세상 가득

팔             팔

    랑             랑

팔              팔

     랑             랑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