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의 오월

시조 2010. 5. 9. 07:45

 

태화산의 오월



오월 태화산이

소리의 베 짜고 있다.


연두 빛 목소리가

뭉클대는 등성이로


목 젖은 두견새 울음

철쭉꽃에 녹아든다.



군왕대 맑은 지기地氣

솔바람으로 퍼 올려서


태화천 물소리에

염불가루 곱게 타서


돌부처 새겨진 미소

사바세계로 보낸다.





 201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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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시조 2010. 5. 5. 07:56

 

歸鄕



옛집 앞 고샅 걸으니

세월만큼의 무게도 없다.

아이들 목소리

넘쳐나던 담 머리에

실각시잠자리 혼자

오수에 젖어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에 눈을 이고

반기는 웃음마다

가는 실금 어리었다.

빈 골목 퀭한 바람에

눈물 적시는 저녁놀…….


20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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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3

시/제3시집-춤바위 2010. 4. 7. 10:10

독도3

 

 눈을 뜨고 잔다.

 

파도에 갈리어

반달만큼 남았어도

 

대양을 막아선

저 완강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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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는 날

시/제3시집-춤바위 2010. 3. 31. 11:04

봄비 오는 날

 

           엄 기 창

 

 

봄비 오는 날

빗소리에

한 사람 목 맨 부음이 묻어오고

 

매화꽃은 한

봉오리씩

겨울 떨치고 피어나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3월의 눈발들이 핏기 잃은 가지마다

날선 눈꽃으로

숨을 막아도

 

멍든 아픔 삭혀

꽃등 환하게 일어서는 매화

 

아프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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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설晩雪

시조 2010. 3. 20. 16:32

 

만설晩雪



필동    

말동

매화꽃 봉오리 위로


설화

피어

눈물로 질까 떨다가


온 눈꽃 다 지고 나니

매화 눈 못 뜰까 잠 못 드네.


201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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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보문산

시조 2010. 3. 1. 09:41

 

내 사랑 보문산



비 그치자 보문산이 봄 화장을 하고 있다.

골안개 분칠하는 산기슭 따라 돌며

바람은 실가지마다 붉은 연지 찍고 있다.


잘 익은 초록빛이 온 도시를 다 씻는다.

고촉사 목탁소리에 불음佛音이 묻어나서

도시의 모든 귀들이 산 쪽으로 열려있다.


아픔도 삭혀내면 사랑으로 익는 것을

온 산 자락마다 흐드러진 저 단풍아

누구의 눈물을 모아 꽃처럼 붉었느냐?


마음이 어지러운 날 창문을 열고 보면

시루봉 앞이마가 백설로 정결하다.

마음이 빗질 되어서 콧노래로 돋는다.


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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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老僧

시조 2010. 2. 1. 10:21

 

노승老僧



밤새워
독경讀經으로

살금살금 벗겨내어


솔바람 풍경소리

찬 이슬에 재웠다가


부처님 

입가의 미소

동백 冬柏 으로 피웠다.


2010.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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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시조 2010. 1. 31. 08:11

 

동반자


아내가 발 틀리면 내가 발을 맞춰주고

내가 발 틀리면 아내가 발 맞춰주고

큰소리 다툼하나 없이 인생길을 걷는다.


아내가 멈춰서면 내가 손을 끌어주고

내가 멈춰서면 아내가 등 밀어주며

힘들면 끌고 밀면서 인생 고개 넘는다.


둘이 하나 되어 마음 맞춰 살다 보면

사랑만도 부족한데 미워할 새 어디 있나.

흥타령 어깨동무로 사는 세상은 늘 봄이네.


2010. 1. 30


posted by 청라

취설吹雪

시/제3시집-춤바위 2010. 1. 21. 11:45

취설吹雪


  마을에서 벗어나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섬처럼 조그만 집 하나 있습니다.  비어있는 도화지처럼 온 세상은 눈 덮여 하얗고, 길 끊어진 이웃은 십리보다 멉니다. 눈보라가 파도처럼 넘실거립니다. 울타리가 지워지고, 사립문이 지워지고, 위태롭게 서 있던 작은 집도  붓질 한 번에 지워집니다. 온 세상이 지워진 도화지 위에 등대인가요, 장밋빛 불빛 비친 창문만 화안합니다.


  세월이 머리위에 눈빛으로 앉은 할머니는 저녁 상 위에 모주 한 병을 올려놉니다. 참나무 울타리로 으르렁 으르렁 눈보라가 지나가는데, 상관없지요. 할머니, 할아버지 부딪치는 잔에는 흥이 익어 얼굴은 먹오디 빛입니다. 할아버지는 추억의 갈피 속에서 가장 정다운 콧노래 뽑아내어 흥얼거리고, 할머니의 몸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타지로 나간 자식들 목소리 기다리다 수화기 위엔 뿌옇게 먼지가 쌓였지만, 신명이 물오른 할아버지 눈가엔 섬처럼 외로운 외딴집 겨울밤도 할머니 하나 있어 향연饗宴입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마다 가려주는 취설吹雪도 포근한 수막繡幕입니다.        


2010. 1. 21

posted by 청라

방포의 새벽

시조 2010. 1. 15. 09:39

 

방포의 새벽


바람이 잠을 깨어 새벽 바다를 건너간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일어서는 파도소리

천 개의 물이랑마다 반짝이는 그믐달빛


혼곤한 꿈을 열고  파도 소리 들어와서

어지러운 꿈을 깨워 새 하루를 빚어놓네.

고요 속 누웠던 열기 술렁술렁 일렁이고.


나는 누구인가 바다에게 물어보니

일찍 깬 갈매기만 무어라고 지껄이네.

바다야 말 아니 해도 내가 누군지 보았노라.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