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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4시집-세한도에 사는 사내에 해당되는 글 78건
- 2016.12.30 송신送信
- 2016.12.27 솔숲에서
- 2016.12.15 적색경보
- 2016.12.10 인연
- 2016.12.01 늦가을 소묘素描
- 2016.11.23 이상한 나라
- 2016.11.20 이 가을에
- 2016.11.18 둥치에 핀 꽃 1
- 2016.11.08 조룡대, 머리를 감다
- 2016.10.25 가림성加林城의 가을
글
송신送信
눈 내리는 저녁 좋은 사람과
복 지느러미 정종 한 잔 마셨습니다.
가슴에 가득 찼던 겨울바람도
안에서부터 따뜻해졌습니다.
술 한 모금 속에 담긴 복 지느러미 싸한 향기가
말초신경 끝에서 반짝 등을 켜들 때
좋은 사람아
빛의 산란散亂 속에서 춤추며 쌓이는 눈은
당신을 좀 더 잡고 싶은 내 마음입니다.
2016. 12. 30
<대전문학>75호(2017년 봄호)
글
솔숲에서
한 나무 가지에 황혼이 오면
물색모르는 나무들은 박수를 친다.
햇살 향해 오르는 발걸음
가벼워진다고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한 나무가 아프면
모든 나무가 아프고
모든 나무가 아프면
곧 숲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파란 속삭임으로
손잡고 서있던 나무가 넘어질 때
너털웃음 웃으며
송화를 더 많이 피워 올리는 나무들아
숲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으니
너희들의 황혼도 멀지 않았다.
2016. 12. 27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적색경보
할머니 백발 위에 얹힌 호접 핀처럼
낮달이 하나 피뢰침에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늦가을 오후
바람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다
십자가에 목 잡힌 나의 비닐봉지는
비명처럼 검은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사방에서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에
은밀한 비밀들은 낯선 모니터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고
고층건물의 우람한 근육에 막힌 길들은
가닥가닥 끊어져 바람에 펄럭인다.
발자국마다 넘치는 자동차 소리 밟아가면서
으악새 소리로 마중 나온
산의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미친 듯 경련하는
플라타너스 마지막 잎새의 불안
내 마음의 신호등엔
반짝 하고 빨간 불이 켜진다.
2016. 12. 15
『심상 2017년 6월호』
글
인연
아내는 아침 저녁
당약을 꼭꼭 챙겨주면서도
아이들 입맛을 위해
반찬에 물엿과 매실 엑기스를 들이붓는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의 주름살이
진심임을 안다.
아주 자주 아이들에 대한 사랑 앞에
바람에 날려보내는 플라타너스 잎새라 해도….
하나의 인연은 동아줄이 아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얽히면서
뒤로 밀리기도 하고 가끔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아내의 눈가에 내비치는 아름다운 근심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설탕 투성이의 음식을
불평 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
2016. 12. 10
글
늦가을 소묘素描
할아버지 끌고 가는 리어카 위엔
할머니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다.
자가용은 못 태워줘도, 임자
리어카는 실컷 태워줄끼다.
힘들어서 워쩐대요. 워떠칸대요.
올라가는 고갯길 바람이 살짝 밀어준다.
마른 수숫대 같아서 눈물 나는 사람
늦가을 햇살처럼 스르르 사라질까봐
뒤돌아보며 자꾸 말 걸며 숨차게 올라간다.
2016. 12. 1
글
이상한 나라
꽃 한 송이 받아도
벌을 받는 나라
물 한 모금 주어도
죄가 되는 나라
정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나라
국민들은 죽어나도
웃고 있는 나라
내 손자 손녀가
살아갈 나라
이 쪽 저 쪽 돌아봐도
막막한 나라
2016. 11. 23
글
이 가을에
술잔에
들국화 한 송이 띄웠다.
아! 가을 냄새
술 마시고
나는 가을에 취해버렸다.
인생 뭐 별 거 있는가.
웃으며 살면 그만이지
넘기 힘든 고개도
한 발 한 발
넘다 보면 정상이라네.
찌푸리고 살지 말고
가을이 오면
그냥 단풍이 되세.
2016. 11. 20
글
사진 김주형
둥치에 핀 꽃
젊음은 벽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불의不義한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내 피를 연소燃燒시켜
거친 땅에 정의正義를 세운다.
사월의 눈보라 앞에서도
굳센 정신의 심지에 불을 붙여
사랑을 완성한
저 꽃을 보라.
청춘은 쉽게 꺾이지 않아서
외로워도 아름답다.
2016. 11. 18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조룡대, 머리를 감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깃발이 있다.
깃발 들고 모인 사람들은
제 그림자는 볼 줄 모른다.
조룡대에 와서
주먹질 하는 나그네들아
조룡대는 날마다 죽지를 자르고 싶다.
부소산에 단풍 한 잎 물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자란
소정방의 무릎 자국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
지느러미라도 있었다면
천 년 전 그 날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을
깃발 들고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아,
비듬처럼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식히려고
백마강 물살을 빌려 조룡대는
오늘도 머리를 감는다.
2016, 11. 8
『심상 2017년 6월호』
글
가림성加林城의 가을
백가苩加는 무슨 소망을 돌에 담아 쌓았을까.
가림성加林城의 가을은 억새 울음에 젖어있다.
상좌평上佐平에 있으면서 또 무었을 꿈꾸었기에
피로 일어났다가 피로 쓰러졌는가.
멀리 보이는 금강 하구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부지런한 세월만 바다로 흐르고 있다.
역사 앞에 서면 인생 부귀는 한낱 구름인데
날리는 신문 조각마다 백가苩加가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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