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삶의 스승

                 - 임강빈 선생님 보내는 자리에서

 

 

 

선생님을 만나기 전

청와집속의 모일某日에 반해

내 마음 속에 시의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강릉의 바닷가 선술집에서

처음 술잔을 부딪치며

시를 말씀하실 때

나는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 곁에 서면

늘 금강의 편안한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큰 소나무 솔향기가 풍겼습니다.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실 때에도

큰 말씀이

마음으로 건너왔습니다.

 

너무도 따뜻해서

모닥불 같았던

잔잔한 미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눈보라 속 무수한

를 남기고

 

선생님의 발걸음은 이제

바람이 되신 건가요?

시를 쓰시다 말고

달 따라 가신 건가요?

 

선생님은 가셨지만

나는 아직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삶의 스승으로 내 가슴에

영원히 피어있을 겁니다.

posted by 청라

계곡에서

계곡에서

 

 

장맛비 그친 날 아침

산의 사타구니가 쏟아내는 물소리에

큰스님 젊음이 서서

 

선연히 피어난

나리꽃 한 송이


2016. 7. 4

posted by 청라

연꽃

연꽃

 

끓어오르는 사랑

물밑에 재워놨더니

 

스스로 익어

폭죽처럼 터져버린

 

저 황홀한

고백,

 

고백.

 

posted by 청라

갇힌 바다

갇힌 바다

 

 

방파제들이 쇠사슬처럼

바다의 자유를 옭아매고 있다.

 

갈매기도 사람 목소리로 운다.

 

밤 내 불빛에 지친 바다가

낮은 물결로 뒤척이며

신음을 하면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소망들과

술 취한 사람들이 던진 욕설이

부유물 되어 떠다니고 있다. 


기름띠에는

떠오르다 만 무지개가 걸려있다. 


만선의 꿈을 접은 낡은 어선들이

닳아지는 생명줄에 매달려 사는 곳 


견고堅固한 항구에는

분노 한 번 포효咆哮하지 못한 바다가

갇혀있다.

 


2016. 6. 2

대전문학73(2016년 가을호)

posted by 청라

어떤 시

어떤 시

 

 

못 생긴 돌이라고

버리려다가

수석水石 하나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모두들

그 돌이 가장 좋단다.

 

버리려다 시집 끝자락에 올려놓은

나의 어떤 시처럼


2016. 5. 29

posted by 청라

누군가 보고 있다

누군가 보고 있다

 

 

술에 취해서 가끔은

비 젖은 전봇대에 쉬를 하기도 하고

적색 등 횡단보도를

바람같이 건너기도 했던 젊은 날에는

 

마음속에

하느님을 가득 들여놓고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죄악의 씨앗들을 맷돌로 갈아댔는데

 

누군가 보고 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둥그런 눈을 번득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양심을 찍어가고 있다.

 

나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섬광에 가슴을 찔리며 산다.

나의 낭만은 피를 흘리고 있다.

 

감시의 풀밭에서

독초는 더 무성히 자라나지만

꽃같이 아름다운 나의 죄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떨면서 산다.

 

하늘이 너무 맑아도

내 마음의 악기들은 아픈 소리를 내고

수많은 시선의 칼날 아래서

나의 평화는 유리처럼 부서진다.

 

아무리 깊이 숨어도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주문에 걸려

어머니의 자장가를 잃어버리고

 

야금야금

작은 죄를 모의하던

설렘도 죽어버렸다.


2016. 4. 22

posted by 청라

여름날 아침

여름날 아침

 

 

풀잎 끝에 대롱거리는

이슬을 보다

나는 이슬에 갇혔었지.

 

하늘은 왜

투명한 목소리로 거기 박혀있을까

 

모란 꽃잎 위에 속살거리는

별들의 이야기 방울은

왜 수박 속처럼 맛이 있을까

 

구슬 빛에 홀려서

밤새도록 사연 깊게 울어대던

두견새 울음을 꿰어

영롱한 목걸이 하나 만들고 싶었지.

 

툭 하고 떨어져 꿈이 깨어질까봐

불어오는 실바람도

체로 치고 싶었지.

 

세상이 모두 신기하고

찬란하게 보이던

내 손자만한 그런 날 여름 아침에


한국문학인2016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꽃밭에서

꽃밭에서

 

 

눈물에서 실을 뽑아

가슴 울리는

그런 시의 베 한 자락 짜지 못할 지라도

 

꽃에 묻혀서

꽃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온 세상 한숨의 바다를  

환한 꽃으로 불 질렀으면 좋겠네.


2016. 3. 18

posted by 청라

 

 

평탄한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발이 꼬일 때가 있다.

 

누가 네 발목을 잡는가.

돌부리 하나 솟지 않은 맨땅

네 발을 거는 것은 네 스스로의 욕심

 

버려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솟아올라라.

 

인생이 송두리째

넘어지기 전에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2016. 2. 14

 

posted by 청라

청우정聽雨亭에서

청우정聽雨亭에서

 

 

솔 기둥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는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사념思念들이

빗질되어 말갛게 가라앉고

 

마곡천 물소리 속에 묻어온

독경讀經 소리에

한 송이씩 어두운 마음의 뜰을

밝히는 풀꽃

 

빗소리는

거울이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내 안의 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