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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4시집-세한도에 사는 사내에 해당되는 글 78건
- 2016.01.25 삶
- 2016.01.09 삼불봉 해맞이
- 2015.12.29 가시
- 2015.12.02 동방의 횃불 -「길림 문학사랑」 성립成立 5주년을 축하하며
- 2015.11.23 작은 음악회
- 2015.10.29 삼척항에서
- 2015.10.13 사곡 장날
- 2015.09.27 공주에 가서
- 2015.09.24 산사山寺
- 2015.08.23 일주문一株門에 기대어서
글
삶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운 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
문득문득 피어나는 오색구름 같은
그리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바람 불고 가시덤불 우거진
고갯길
뒤돌아보지는 말자.
바위 그늘에 앉아 그냥 그리워만 하자.
다시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 1. 25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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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
|
글
가시
탱자나무 큰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려고
한사코 침을 세운 것은 아니다.
탱자의 신 맛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허공을 향해 그냥 솟았다가
탱자 빛깔로 물들어 무디어질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가시보다
보이지 않는 가시가 무서운 법이다.
네 혀는
누구를 해치려고 그렇게 날카로운 것이냐
탱자나무 가시보다 더 크고 험상궂은
감춰진 가시
남의 속살을 헤집어
아프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고
그래서 네가 빛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찌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네 숙명이 슬프다.
세우는 것보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너희들의 성城 때문에
깃발 들고 목소리 큰 자들은
양지쪽에 모여들고
입 다문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늘로 밀려나고 있다.
가시 풀 무성하게 우거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며
철없던 시절
박수치며 환호하던 그 손으로
그 손에 쥐어진
내 한 표의 힘으로
너희들을 봉인封印한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고
가꿀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2015. 12. 29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동방의 횃불
-「길림 문학사랑」 성립成立 5주년을 축하하며
눈 감으면 들린다.
삭풍 몰아치는 북녘 땅
하이란강 물소리와 말 달리는 소리가.
구국救國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조들의 고귀한 씨앗
툰드라의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거대한 화원花園을 이뤘나니
모든 것을 쇳물로 녹여
저희 몸에 덧입히는
중화中華의 불가마 속에서도
백두白頭의 얼 굳게 지켜
교목喬木처럼 둥치 키워가는
「길림 문학사랑」 성립成立 5주년에 박수를 보내노라.
먼지처럼 쌓이고 쌓인 고난의 역사
자양분 삼아
어깨동무하고 오순도순 걷다가 보면
긴 겨울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동방의 횃불로 서리.
글
작은 음악회
송은애의 '산다는 것은'에 다녀와서
오카리나 소리에
더욱 현란絢爛해지는 낙엽들의 춤
녹차 한 잔 마시며
음악 소리에 취하다 보면
나도 빨갛게 물들어 춤추는
늦가을 나비가 된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일이다.
지붕이 낮은 사람들의 마을엔
이미 겨울이 와 있지만
시를 태우고 노래를 태워
추위를 녹히려고 피워올리는 저 작은 기도
아이들의 박수 소리에
떨어지던 잎새들이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2015. 11. 23
글
삼척항에서
달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만선滿船의 달빛을 바다에 부려놓았다.
파도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
나는 야성野性의 포말泡沫이 한눈에 보이는
선창가 횟집에서
바다의 살점을 씹어가면서
시든 젊음의 등잔에 불을 밝힌다.
아! 바위의 심장에 뿌리박고
사랑으로 피어난
한 송이 해당화이고 싶어라.
금박의 꽃술마다 수로水路의 유혹으로 익어
불타는 열매를 맺고 싶어라.
오십천으로 떠내려 온 태백산
봉우리마다
한 등씩 반짝이는 별을 걸면서
모닥불처럼 뜨거운 정라항 열기에 취해
잠들지 못한다.
밤새도록 내 핏속에서
질주하는 대양의 바람소리가 들린다.
2015. 10. 29
<대전문학> 70호(2015년 가을호)
『시문학』598호(2021년 5월호)
글
사곡 장날
엄 기 창
이틀, 이레 아침이면
수탉보다 먼저 잠이 깼다.
어머니 손잡고 장에 가는 날엔
회재 넘어 시오리 산길도
걸음이 가뿐했다.
팔 것은 달걀 몇 줄에
콩 보리 서너 되
등유를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빨고 빨아서 대만 남은
아이스케키 입에 물고
태평소 가락에 어깨 들썩이며
써꺼스 마당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는 빈 주머니로
살 것도 없이
장터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점심 짜장면 한 그릇은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소원,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이 맺힌 어머니는
짜장면 대신 얘기책은 꼭 샀고
돌아가는 길 내내
알록달록한 호기심으로
숙향전 숙영낭자전의 주인공 되어
어머니에게 짜장면 배터지게 사주는 꿈을 꿨다.
2015. 10. 13
글
공주에 가서
엄 기 창
지금
어디쯤 헤매고 있는가?
낙엽 지는 게
외롭게 느껴지면
젊은 날의 공주로 한 번 가보세.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셔도
가슴이 더 따듯해지던 곳
술에 취해
욕설을 내뱉어도
입에선 역사의 향기가 나던 곳
젊은 날 버리고 간 아픔을 기억해주는
금강으로 가서
오늘의 슬픔도 코스모스 꽃처럼 띄워보내세.
공산성 등성이에도
가을이 익었으리.
단풍으로 다시 한 번
삶을 불태워 보세.
글
산사山寺
풍경소리 불러낸 달이
더 둥그렇게 떠오르고
달빛이 씻어놓은
탑 그늘엔
까만 적막
적막 속에서
목탁소리 일어선다.
솔바람 타고
절 안을 한 바퀴 휘돌다가
속세의 꿈밭을 밝혀주려고
산문 밖으로 내닫는다.
목탁소리로 정화된 법당
밤새도록 노승의 독경讀經에
부처님 미소가 익어
아침 연못
어둠이 토해내듯
말갛게 피어난 연꽃 한 송이......
2015. 9. 24
<문학저널>2015년 11월호
글
일주문一株門에 기대어서
내 몸의 반은
사바에 걸치고
나머지 반쪽은
불계佛界에 들여놓고
일주문一株門에 기대어서
목탁소리 듣다가 보면
꽃이 지는 의미를 알 듯도 하다.
속세의 짐을 문 앞에 내려놓고
향내 따라 들어오라고
풍경소리 마중 왔지만
비우고 비워도
투명한 바람이 될 수 없는
업연業緣의 질긴 끈이여!
별이 내릴 때까지 흔들리다가
나는 양쪽으로 발 걸친
일주문 기둥이 되어버렸다.
2015. 8. 15
<동서문학>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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