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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낙우송
바라볼 때마다 늘
새로운 눈빛으로 말하는
나무
수만의 함성으로 솟아 올라
초록빛 순수의 꿈이
마침내 푸른 창공에 젖는다.
곧게만 땅을 딛고 선 마음
허허로워
산처럼 바다처럼 하늘처럼 크고
굳은 듯 보드라운 깃발마다
등불을 켜고
어두운 세상으로 빛을 뿌리고 있다.
새떼처럼 떠나간 사람들 돌아와
피곤한 날개 접으면
가장 먼저 가슴을 활짝 열어 놓는 나무
글
경포대에서
유리잔 속에 가득 고인
파도 소리를 마시고
황혼이 뜨겁게 달아 오른
바다를 본다.
끝없이 도약하는 파도와
한 송이씩 피어나는
불꽃
은밀한 눈빛들이 서로 얽히고
눈가루처럼 날리는 어둠.
그대 마음은
바다 물빛이 되라.
나는 따스한 눈빛으로 투신하는
별이 되리니.
상기한 바다는 밤새도록
한 잎의 해당화를 피우기 위해
가파른 기슭을 오르내리고,
새벽이 오면 우리는
갈매기 두 마리로 날자
글
三月
고층 빌딩 위에 까맣게
애드벌룬 하나
젊음은 자꾸만 날아 오르려 하고
도시는 한사코
줄을 당기고 있다.
겨울이 갇혀 있던
손수건만한 나의 뜨락에
분홍빛 바람기로 피어난
진달래꽃 한 송이
아침에 씹은 풋나물들은
햇살같은 웃음으로 살아 올라서
만나는 사람마다 손잡아 흔들고 싶은
마음은 몽롱한 봄안개
실비 그치면
산꽃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고
눈물이 많은 나무는
더욱 고운 새순을 피워 내리라.
영롱한 새 소리에 청람빛 하늘이 녹아
불꽃으로 타오르는 三月에
금광을 캐듯 눈 속에 묻혔던
사랑을 캐보자
소녀야!
글
눈오는 밤에
세상을 지우며
눈이 내린다.
우리들이 걸어 온
발자욱을 덮는다
어지러운 불빛들도 차분히 가라앉고
포장마차엔
어둠이 반쯤 찬 술잔이 하나
술잔 속에 잠겨 있는 얼굴이 하나
술맛처럼 타오르는 옛날을 마시며
창밖을 보면
그믐의 막막한 어둠바다로
한 조각씩 별이 부서져 내린다.
하얗게 덮힐수록 내가슴 속에
솔잎처럼 파랗게 살아나는
그리움을 묻으라고
눈이 내린다.
글
10월 마지막 날
바람부는 날 단풍잎은
높은 음성으로 떨어진다
어느새 지나가버린 인생의 여백이
꽃물로 물들어 추락하고 있다.
은적암 산문을 들어서면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다.
고개 숙이다 만 국화꽃 사이
열 여덟 가을에
산그림자 속으로 숨은 사람
마음속 빈 들판에
언제나 피어 있는 나의 신부여
속세의 옷고름 아직 풀지 않았다기에
갈바람 갈피에 끼어 찾아 왔더니
목탁 소리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
부처님 말씀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 사람
염불 가루 먼저 내리는 곳에
아픔의 잎새는 더 곱게 물드는가
청춘의 그림자 보러 왔다가
빈 산만 보고 가는 불혹의 내 발길에
겨울로 넘어가는 달력 한 장처럼
서걱이며 쌓이는 이 진한 허무여
-시작노트-
나는 초등학교 시절 마을 누나를 좋아한 일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쯤 그 누나가 마을에서 사라져서 어른들께 사연을 물었더니 중이 되려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늘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는데, 대학교 3학년 때인가 동학사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다가 일행들이 기다려서 바로 헤어졌다. 이년 후인가 다시 동학사엘 들렸더니 그 누나 스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40이 좀 넘어 어느 암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그 누님은 속에의 모든 일을 잊고, 정말로 속세의 번뇌를 초월한 스님이 되어있었다. 홀로 돌아오며 섭섭한 심경을 노래한 시다. 그 날이 바로 시월 30일 이었다.
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따뜻한 마음이 내비치는
그대 눈빛의 양지쪽 풀밭에 누우면
바람 소리 맑은 고향의
해바라기꽃이 생각나고
해바라기꽃 대궁 따라 끝없이 맴도는
나는 언제까지나
꿈 많은 술래이고 싶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추잠자리 좇다가
허 허 웃는 풀꽃으로 서 있으면
바람은
붉은 보자기 펼쳐 놓은 하늘 한 자락 찢어다가
체온이 먼저 식는
발끝 어디쯤 싸매 주고
단절의 끈 한켠에서
간절한 송신을 띄우고 있다.
아삼한 봄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몽롱한 그대의 언어
등불처럼만 바라보며
가끔은 내가 던진 웃음이
쓸쓸한 어둠이 되어 돌아와도
나는
어둠을 까서 빛을 만들고
그대의 새벽 꿈밭에 빛의 소리를 전해주는
부리 고운 까치로 살아가고 싶다.
글
短歌·5
별처럼 반짝이지만
두 개의 離別, 세 개의 離別,
수많은 이별들은 반짝이지 못한다.
너의 목에 걸린 백 여덟의 離別
나와의 마지막 이별도
긴 세월 돌아누운 은하수처럼
부연 빛 덩어리 속으로 잦아든다.
나의 가슴 속
오직 한 개의 離別
활활 불타는 한 개의 離別
지금도 반짝이고 있다.
너의 잿빛 가슴 속을 침투하고 있다.
글
短歌·4
수편선상에 무지개가
영롱히 머리를 든다.
맨드라미만한 섬 하나 못 핀
동해바다
무한의 배꼽 위에
지난 달 영은암 여승방
깨진 거울 속으로 사라진
번뇌의 일곱 가지 갈등
하얀 소름의 소금기
번득이며
파도는 뜨거운 악수를 하고 지나간다.
눈을 감고 바라보면
더욱 선명한
억겁의 파도 소리로 씻어낼 수 없는
당신의 모습
글
短歌·3
눈 위에 떨어진
피 한 방울처럼
너와 나는 남남이다.
새벽부터 목탁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다.
우주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후광에 쌓여 온 너의
하얀 손
그 하얀 손의 고개짓
四十九日 밤낮을 눈 안 붙이고
나를 위해 목탁만 두드리더니
너는 하얗게 승천하고
아직 붉은
나와, 너는 남남이다.
글
短歌·2
나의 검은 구두발이 털을 세우고
조용한 너의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
돌부리를 걷어 차면서 주먹을
내두르면서
긴 뿌리 끝 담담한
너의 바다에 도전한다
수천의 자갈 소리로
온몸 기름을 다 태워 불을 밝히고,
빈 뼈만 하얗게 죽어 있어도
너의 독경 소리는 아직
나의 가슴에
한 송이의 연꽃도 피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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